[CJ Kang 방북기65]평양을 떠나던 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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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은 밝아오고 이제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을 떠나는 날이다. 내가 머무는 동안 답사하였던 여러 장소들과 곳곳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 여러가지 제도들을 떠올려보며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그동안 속필로 기록해온 여행 메모장을 죽 훑어보면서 이번 여행 전체를 되돌아보았다.

나의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방문기를 써서 통일을 위하여 북부조국의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북의 진실을 모르는 민중과 그것을 알고 난 이후의 민중이 통일을 바라고 추구하는 것은 천지 차이란 것을 나 스스로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특별히 글재주가 좋은 사람도 아니지만 간절히 통일을 꿈꾸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통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비록 그 길이 험하고 힘들다해도 그 길을 걷기를 마다하지 않을 각오를 하고 이번 여행을 시작했었다.

이곳 북부조국에서 머물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깨달았다. 내가 쓰게 될 방문기로 북부조국의 이 진실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평양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하였다.

오늘은 산책을 나가지 않기로 하였기에 어제 아침의 대동강변 산책에서 찍은 불타는 아침노을을 포함한 몇몇 사진들을 방문기 이번 회에서 나누기로 한다.

이번 여행 가운데 북부조국을 아주 잘 표현한 듯한 불타는 아침 노을의 대동강변. ⓒCJ Kang

이번 여행 가운데 북부조국을 아주 잘 표현한 듯한 불타는 아침 노을의 대동강변. ⓒCJ Kang

우리가 승리의 기치따라 연극을 관람하였던 국립연극극장. ⓒCJ Kang

우리가 승리의 기치따라 연극을 관람하였던 국립연극극장. ⓒCJ Kang

아침 등교길의 두 여학생 모습1. ⓒCJ Kang

아침 등교길의 두 여학생 모습1. ⓒCJ Kang

아침 등교길의 두 여학생 모습2. ⓒCJ Kang

아침 등교길의 두 여학생 모습2. ⓒCJ Kang

아침 식사시간에 우리가 떠나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 얼굴이 익었던 박송미 봉사원과 남부조국의 문근영을 닮은 김현순 봉사원이 우리가 앉은 식탁을 찾아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매일 아침 친절하고 품위있게 봉사해준 두 접대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니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작별인사를 하게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심란해진다.

ⓒCJ Kang

ⓒCJ Kang

어제 아침의 일이다. 식당을 막 나와서 복도로 들어서는데 이미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 조선대학교 조선어교육과 맹복실 조교수와 한 여학생이 어깨동무를 하고는 너무도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는 사진부터 한 장 찍고는 말을 걸었다. 교수와 학생의 모습이 이렇게도 정다울 수도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은 얼마나 어려운 존재였던가? 그렇지만 이렇게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 교육의 시작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맹복실 교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제자와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두 사제간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만보아도 좋았지만 통일을 꿈꾸는 한가지 공통점을 가진 동포란 것이 나도 두 사람의 환영을 받고 함께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이었다.

일본의 동포 후세들을 위한 조선대학교의 이런 사제간의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본 것은 내가 일본의 조선대학교와 수많은 조선학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이후에 통일운동을 함께 하며 교류하게 된 재일동포들의 조선학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조선대학교 조선어교육과 맹복실 교수와 제자와의 허물없이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여 기념사진을 찍다. ⓒCJ Kang

조선대학교 조선어교육과 맹복실 교수와 제자와의 허물없이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여 기념사진을 찍다. ⓒCJ Kang

복도에서 아래층으로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용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혼자서 나즈막하게 음악을 켜놓고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발레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마음 놓고 연습에 집중하고 있었나보다.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려 말을 거니 조선대학교 영어교육 전공 학생으로 사는 곳은 오사카라고 하였다. 무용은 소조활동으로 하고 있는데 혼자 맡은 부분을 연습하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영어를 전공하면서 이렇게 따로 무용을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 동포 여학생의 젊은 학창시절이 참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진다.

ⓒCJ Kang

ⓒCJ Kang

 

평양호텔 2층의 책방에 들리니 어제 책을 고르다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던 송영희 판매원은 보이지 않고 다른 판매원이 일하고 있었다. 그 판매원에게서 음악 CD 몇 장과 소설 몇 권을 추천받아 더 구입하였다. 송영희 판매원은 오전에 출근하여 호텔 숙박객들이 저녁 때 들른 후에 퇴근한다고 하였다.

내가 어제 조선고대사에 관하여 책을 찾는다고 하니 조선통사를 권해주었다. 그 책은 내가 이번 여행을 가기 전에 미국의 어떤 동지의 부탁으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돌아와서 그 동지에게 전해주었더니 읽고는 너무도 고마워하였다. 무엇보다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100여 페이지에 달하도록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며, 북부조국이 우리의 뿌리를 깊이 이해하고 친일사관을 모두 씻어버리고 후세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내가 미국의 통일운동 선배로부터 그의 서재에서 조선전사의 수십 권 책들 가운데 고조선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기 위하여 제2권을 빌렸는데 고조선에 관한 부분이 그 두툼한 책 한 권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고조선 시대의 유물 등 수많은 출토품들의 사진자료와 함께 서술되어 북부조국이 우리의 역사를 바르고 깊게 연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나고보니 참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5층 휴게실의 장수복 접대원에게 내가 도착했을 때 하였던 월급이 얼마인가하는 질문을 내가 떠나오기 전날 다시 이곳 책방의 송영희 판매원에게도 했었다. 물론 그 질문은 오로지 북부조국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외부에선 너무도 알지 못하니 큰 실례가 되는 것을 잘 알지만 통일을 위해 알리려는 목적이라고 충분히 설명을 한 후에 질문한 것이었다. 송영희 판매원은 내가 장수복 동무에게서 들었던 월급 6천원에 상금 5만원, 그외 배급으로 받게 되는 쌀과 부식품 외 여러가지 사회보장에 대해서 말해준 것과 자신의 월급도 별로 다르지 않다며 거의 비슷하다고 말해주었다.

한편 송영희 판매원은 결혼하였고, 가족으로 남편과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였으니 두 사람의 수입이 곧 한 가정의 수입이 되기에 남편의 수입은 어떤가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자기보다 좀 더 번다고 하면서 그것이 세대주의 체면을 세워준다고 말한다.

한데 남편이 좀 더 벌기는 하는데 정확하게 얼마를 버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내가 남편이 얼마를 버는지도 모르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니 세대주에게 물어서 잘 알아보고 이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말했었다. 송영희 판매원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바로 말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북부조국 인민들은 우리처럼 돈으로 대부분의 생활비를 해결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어서 남편의 월급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내기에 정말 모르는 수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평양호텔 2층 책방의 송영희 판매원과 함께. 내게 필요한 책과 여러 귀중한 소설들을 잘 소개해주었고, 인민들의 생활에 대한 나의 질문에도 잘 대답해주었다. ⓒCJ Kang

평양호텔 2층 책방의 송영희 판매원과 함께. 내게 필요한 책과 여러 귀중한 소설들을 잘 소개해주었고, 인민들의 생활에 대한 나의 질문에도 잘 대답해주었다. ⓒCJ Kang

이번 여행 이후로는 북부조국 인민들에게 월급이 얼마냐는 식의 이런 무례한 질문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세상의 우리들과는 살아가는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월급을 얼마를 받느냐는 것으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재단하고 짐작하는 것은 북부조국 인민들의 실제 생활과 완전히 동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내려오니 김미향 안내원과 리영호 운전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서로 정이 들대로 들었는데 이제 곧 이별을 하게 되니 얼굴엔 웃음을 띄고 있지만 모두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는 것을 차분한 분위기로 느낀다. 곧 헤어지게 되는 내 마음 또한 그들의 마음과 마찬가지다.

우리를 태우고 차는 평양역으로 출발하였다. 북부조국에 입국할 때와 달리 출국은 기차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방문기 다음 회에서 기차여행을 하면서 찍은 북부조국의 기찻길 주변의 사진들을 통일을 꿈꾸는 수많은 민중에게 선물로 드리고 싶다. (2015.8.6.)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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