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심으로 구성된 북한의 국가과학원

Print Friendly, PDF & Email

12월 1일은 북한의 국가과학원이 창립된 날이다.

국가과학원 창립일을 맞아 북한의 국가과학원과 과학기술 중시 정책에 대해 살펴보는 기사를 연재한다.

 

국가과학원은 내각의 한 개 성(부처)으로 북한의 유일한 과학기술행정지도기관으로서 북한의 과학기술발전계획을 작성하고 집행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연구사업과 기술개발, 과학기술심의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성, 중앙기관들을 통하여 전국의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기술관리사업도 총괄하고 있다.

국가과학원 중앙버섯연구소 ⓒwikimapia

국가과학원 중앙버섯연구소 ⓒwikimapia

북한 국가과학원은 1952년 김일성 주석의 발기로 과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 강호제 박사에 따르면 과학원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3개의 부문별 위원회(자연 및 기술과학/의학 및 농학/사회과학)을 꾸렸으며 모두 8개의 연구소(물리수학/화학/의학/농학/역사/물질문화사/경제법학/조선어·조선문학)를 설치했다고 한다.

원래 북한은 일제 패망 후 1년 반이 지난 1947년 2월, ‘북조선 중앙연구소’를 만들었으나 6개월 만에 활동이 중단되었고 1952년 다시 과학원 설립을 준비하게 된다.

김일성 주석은 1952년 4월 전쟁 중이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전쟁 이후 전후복구 사업과 경제건설 사업을 염두에 두고 과학기술자들을 모아 과학원을 설립할 것을 제기하였으며, 12월 1일 과학원이 공식적으로 창립되었다.

강호제 박사가 2010년 민족21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북한의 과학원은 소련의 과학원과 다른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소련 과학원은 과학연구와 기술지원활동이 분리되어 있어 연구는 과학원이 하고 기술지원은 생산성 산하 연구소들이 담당했는데, 북한 과학원은 기술지원활동을 과학원이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 과학원에는 없는 ‘공학연구소’를 추가로 설립해 실용적인 연구를 강화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학연구소는 1950년대 말 1차 5개년계획기간 동안 비날론, 염화비닐, 합성고무, 코크스 없는 제철법 등을 개발해 큰 성과를 냈다고 한다.

강호제 박사는 북한이 1950년대 전쟁의 상처를 빠르게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도 북한의 과학기술 우대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과학원은 1956년 농업과 의학이 분리되고 1964년 사회과학부문이 분리되어 별도의 과학원을 만들어 나가면서 과학기술계 만으로 재조직 되었다.

국가과학원은 몇 차례 조직 확대와 분리를 반복하다가 2005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으로 지금의 국가과학원으로 확정되었다.

2014년 1월 김정은 제1위원장 국가과학원 방문  ⓒ길림신문

2014년 1월 김정은 제1위원장 국가과학원 방문 ⓒ길림신문

현재 국가과학원은 예산편성권까지 확보하여 과학기술 활동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갖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가과학원의 기구로는 1실 21국, 21위원회, 100여 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7개의 분야별 연구분원, 지방의 함흥분원을 운영하고 있고, 자체 실험기구를 생산하는 종합공장과 천문대, 중앙과학기술통보사 등을 두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비날론의 리승기 박사, 잠업학자 계응상 박사는 함흥분원의 책임자를 지낸 대표적인 과학자다.

이동훈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