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59]인민군대와 한 홉의 미숫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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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번에 정기풍 교수가 우리가 머무는 평양호텔을 찾은 것은 내가 알고싶어한 북부조국의 농촌에 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 위한 것과 아울러 노길남 박사님이 크게 관심을 가졌던 인민군대에 관하여 대답을 주기 위해서였다.

원래 우리의 원산행 여행에 정기풍 교수는 함께 하면서 여행하는 동안에 대화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가 계획이 변경되어 이렇게 호텔에서 만나게 되었다.

인민군대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나 크게 관심을 갖는 분야다. 방문기 지난회에서 쓴대로 농촌에 관하여 대화한 것에 이어 오늘은 북부조국의 인민군대에 대하여 정기풍 교수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여기 소개한다.

정기풍 교수. ⓒCJ Kang

정기풍 교수. ⓒCJ Kang

정기풍 교수는 '인민군 군대의 정신과 도덕 풍모'에 대하여 설명하게 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김일성 주석이 1932년 4월 25일 함께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반일인민유격대 (항일유격대)를 창건한 것이 조선인민군의 뿌리이고 시작이다. 항일유격대는 1934년 3월에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되었고, 광복후 1948년 2월 8일에 조선인민군으로 개편되는데 조선인민군은 빨치산 시절의 '한 홉의 미숫가루'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는 군대라고 말한다.

정기풍 교수는 '한 홉의 미숫가루' 정신에 대하여 병사와 지휘관 사이의 눈물겹도록 짙은 사랑에 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부분은 내가 예전에 책에서 '고난의 행군'에 관하여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하였다.

정기풍 교수는 '한 홉의 미숫가루'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인민군대는 관병일치, 군민일치의 군대이며, '병사를 위해 지휘관이 있다', '최고사령관이 바로 동지요 전우다'라는 구호를 알려주면서 지휘관과 병사가 총탄이 쏟아지는 전투 가운데 서로가 서로의 몸으로 보호해줄 만큼의 깊은 신뢰와 동지애로 인민군대는 이뤄져있다고 말해준다.

한 예로 훈련 도중에 철조망 바로 아래에서 어떤 병사의 수류탄 안전고리가 빠졌는데 그것을 본 지휘관이 '엎드려'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려 그 수류탄을 덮쳤고 자신이 희생하면서 병사들을 살렸다고 한다. 그 지휘관이 김광철 영웅인데 그는 90년도의 첫 공화국영웅으로 전쟁때가 아닌 평화적인 시기의 첫 공화국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방문하였을 시기는 남부조국에서 연달아 병사들이 자살을 하였거나 동료 병사들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시점이었다. 이런 일은 갑자기 생기겨난 일이 아니라 이미 해방직후의 남부조국 군대가 태어날 때부터 쭉 있어왔던 일이다. 그래 노길남 박사님도 조선인민군대는 어떤 상황인가에 대하여 취재하려고 했고, 나 또한 그 문제에 관심이 컸다.

평양호텔 접견실에서 정기풍 교수와 필자. ⓒCJ Kang

평양호텔 접견실에서 정기풍 교수와 필자. ⓒCJ Kang

정기풍 교수는 조선인민군대에는 영창제도가 없다고 말해준다. 이미 1950년대에 영창제도는 사라졌는데 원래부터 규정에만 조례로 있었고 실제로는 영창제도 자체가 없었는데 그 규정마저 1950년대에 없앴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군대가 있을 수 있는가? 아무리 인민군대는 지원제이고 스스로가 원하여 입대한다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입대하기 전에 이미 인민군인이 될 젊은이들은 인민군대의 정신에 대하여 배우고 깨닫고 있다해도 모두가 군대에서 잘 적응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에 영창제도가 없다는 것은 일반사회에서 경찰이나 교도소가 없다는 것과 같은데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일까?

정기풍 교수는 항일혁명 시기에 잘못을 저지른 병사가 스스로 땅에 금을 긋도록 하여 지휘관이 그 안에 서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지휘관의 잘못이라면서 스스로 벌을 청한 적이 있는데 잘못을 저지른 병사가 나오시라며 사정을 하였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지금 인민군대에 처벌이나 구류장 자체가 없으며 남부조국에서 말하는 자총(자살)이란 단어자체도 없다고 말해준다.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생활 속에서 까마득히 멀리 있어서 대부분의 인민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며, 감옥이란 곳도 영화를 통하여 아는 정도라면서 예를 들어 '푸에블로'호 사건을 들며 당시 미군들이 머물던 곳을 영화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감옥으로 경험하는 정도라고 한다.

교화소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거기에 가는 사람은 아주 드문데 가끔 사고를 낸 운전수가 가는 정도라고 말해주면서, 남한에서 정치범 수용소라는 악명높은 요덕수용소에 대한 질문에 요덕수용소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곳이라고 잘라서 말한다. 요덕수용소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른 기회에 확인하였는데 다시 거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원산으로 가는 도중에 리영호 운전기사로부터 인민군대는 계급이 없는 군대로 군사호칭이 있을뿐이라며 '중대는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즐겨 부를만큼 조선인민군은 지휘관과 병사, 병사 상호간에 친가족과 같은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이 그냥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식구들 가운데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보통 경찰을 부르거나 가정에다 감방 하나를 만들어두어서 그 못된 자를 가두어두지 않는다. 가정에선 사랑과 훈계로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대원들 (자료사진)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대원들 (자료사진)

(2015.6.13.)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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