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학생의 날, 북한은 광주학생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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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은 학생의 날, 즉,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다.

학생의 날은 1929년 11월 3일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하여 제정된 기념일이다.

ⓒ 한국농어촌공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그려진 그림.

ⓒ 한국농어촌공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그려진 그림.

광주학생운동은 당시 광주시내에서 빚어진 한일중학생 간 충돌로 시작하여 11월 12일 광주지역 학생 시위운동을 거쳐 전국각지로 확대되었던 항일운동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광주학생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NK투데이는 국회도서관에서 북한이 발간한 역사 관련 서적들을 통해 북한에서 인식하고 있는 광주학생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북한 교과서에 실려 있는 광주학생운동의 내용

국회도서관에 있는 북한의 2002년 고등중학교 6학년(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는 북한 학생들이 의무교육과정에서 광주학생운동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광주학생운동 부분은 '제 3절. 3.1인민봉기 후 대중운동의 장성과 초기공산주의운동'중 '1.3.1인민봉기 후 대중운동의 장성' 파트에서 다루고 있다.

북한은 3.1운동 직후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대중운동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수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졌으며 그 중 청년단체로 '조선청년총동맹'이 조직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산총파업, 단천농민봉기와 함께 소개된 것이 바로 광주학생운동이다.

교과서는 우선 사건 발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1929년에는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10월 30일 전라남도 광주-라주(나주) 사이의 기차 안에서 일본남학생놈들이 조선녀학생을 모욕한 것을 계기로 일어났다.

처음 광주역에서 조선학생들과 일본놈들사이에 충돌이 있었는데 일제경찰들은 조선학생들을 때리고 잡아 가두었으며 300여 명의 일본놈중학교 교직원, 학생들은 보총(소총의 북한말)까지 들고 조선인통학생들을 습격하였다.

조선학생 200여 명은 맨 주먹으로 격투를 벌려 놈들에게 보복을 안기였다. 광주의 조선학생들과 시민들의 격분은 고도에 달하였다."     – 고등중학교 6학년 32~33page

나주에서 기차를 이용해 광주로 통학하던 광주여자보통학교 학생 이광춘(왼쪽)과 박기옥. 광주중학생 후쿠다 등 일본인 학생들이 박기옥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희롱한 일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

나주에서 기차를 이용해 광주로 통학하던 광주여자보통학교 학생 이광춘(왼쪽)과 박기옥. 광주중학생 후쿠다 등 일본인 학생들이 박기옥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희롱한 일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

광주학생운동에 대해 한국에서 알려진 것과 비슷하게 북한도 서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교과서는 투쟁이 본격화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1월 3일 광주학생들은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라는 구호를 웨치면서(외치면서) 반일시위를 벌리였다.

이날 그들은 자기들의 정당한 투쟁을 모독하는 글을 낸 광주일보사를 습격하였다. 11일에 학생들은 달려 드는 일제경찰대, 소방대와 맞서 치렬한(치열한) 싸움을 벌리였다.  

광주학생들의 투쟁의 불길은 전국에 퍼져 갔다. 각지에서 6만여 명의 청년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반일시위가 6개월 동안이나 줄기차게 벌어졌다."   – 고등중학교 6학년 33page

북한의 교과서에는 일제에 맞서 싸운 광주학생운동을 광주일보사 습격 등의 구체적인 행동 들어가며 서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국가보훈처.

ⓒ 국가보훈처.

북한 역사사전에 실려 있는 광주학생운동 내용

교과서 외에도 북한에서 발간한 '력사사전'(역사사전)에서도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서술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역사사전이란 무엇일까?

1964년 김일성 주석은 근로자들이 정치, 경제, 과학, 문화, 군사 등 모든 방면에 걸치는 상식을 가질 수 있도록 부문별 사전을 제작하라는 교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 이후 북한은 '경제사전', '정치사전', '철학사전', '역사사전' 등 분야별로 사전을 발간했다고 한다.

북한의 역사사전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특정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서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선 2001년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발간한 역사사전 3권에는 1929년 11월 11일 투쟁부터 그 이후의 활동이 고등중학교 교과서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1월 11일 광주의 전체 청년학생들은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 등의 구호를 웨치면서(외치면서)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을 계속하였다.

광주의 학생들이 지펴 올린 투쟁의 불길은 서울과 평양, 신의주, 함흥, 개성, 대구, 부산을 비롯한 전국 도처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전국 각지에서는 광주학생운동옹호동맹이 조직되였으며 서울에서는 광주학생운동지도위원회가 무어져(꾸려져) 1929년 12월 5일에 전국적으로 일제히 동맹휴학과 반일시위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 역사사전 3권, 151~152page

ⓒ 국가보훈처

ⓒ 국가보훈처

역사사전에는 그 수치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가 줄여서 낸 자료에 의하더라도 1929년 11월부터 1930년 4월까지의 사이에 이 투쟁에는 전국 각지의 194개 학교의 6만여 명의 학생들과 각계각층의 애국적 인민들이 참가하였다."  – 역사사전 3권, 152page

북한에서의 광주학생운동 평가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광주학생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역사사전은 광주학생운동이 "일제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광범한 조선청년학생들 속에서 반일사상을 고취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며 반제투쟁에서 조선청년학생들의 굳센 기개를 시위하였다"며 기본적으로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광주학생운동의 한계에 대한 평가는 없을까?

2001년판 역사사전 이전에 1970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낸 또 다른 역사사전이 있다.

이 역사사전에는 광주학생운동의 한계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1. 혁명의 참모부인 당의 령도(영도, 지도)를 받지 못한 것
2. 전국적으로 앙양된 운동이 분산적으로 진행된 것
3. 노동자, 농민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되지 못한 것
4. 일제의 '야수적 탄압'에 의하여 요구조건을 관철하지 못한 것

물론 1970년판 역사사전도 광주학생운동의 의의를 서술하였는데 그 내용이 2001년판 역사사전과 유사하다.

그러나 1970년판 역사사전에 명시된 광주학생운동의 한계점이 2001년인 30여 년 후에 발행된 역사사전에서 아예 빠져 있다.

그것은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변화되었거나, 또는 역사사전 서술방향 자체가 한계보다 성과 중심으로 바뀐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현재 국회도서관에는 2001년판 이후 역사사전이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북한이 바라보고 있는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평가는 확인할 수가 없다.

ⓒ 국가보훈처

광주학생운동을 추진한 비밀결사 성진회 회원. ⓒ 국가보훈처

북한에서의 광주학생운동 기념 사업

북한에서는 광주학생운동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을까?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11월 3일 즈음에 기념행사를 벌여왔다고 한다.

1959년 11월 2일에 30주년 기념 평양시 보고회를 연 후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빠짐없이 열어왔다고 한다.

또한 1999년에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70주년을 맞아 '광주학생운동 70돌 평양시 청년학생보고회'라는 이름으로 크게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자료센터의 북한 인물 '안경호' 설명에 따르면 2009년에도 '광주학생사건 80돌 기념 평양시보고회'가 개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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