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논란, 북한 교과서에는 일제 강점기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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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논란이다.

특히 국정화가 될 교과서 내용 중에 일제 강점기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게 될지에 대한 논의논쟁이 있다.

그렇다면 북한 교과서에서는 일제 강점기 역사 서술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북한전문통신 NK투데이에서는 국회도서관에 있는 고등중학교 ‘조선력사’ 교과서를 바탕으로 북한 교과서 일제강점기 서술 내용을 연재기사를 통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국회도서관에 소학교 역사 교과서가 없어 소학교 교과서 내용은 소개할 수 없음을 알린다.

 

4)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서술

북한 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파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바로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이다.

고등중학교 6학년 교과서는 갑오농민전쟁을 중국의 태평천국농민전쟁, 인도의 시파이폭동과 함께 19세기 아시아반제민족해방투쟁의 3대 항전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 [출처 : 인터넷]

갑오농민전쟁을 "조선력사상 가장 큰 농민전쟁으로서 류례없이 대규모적이고 격렬한 반제반봉건투쟁"이라며 그 의의를 높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도 제 27과 애국에 피를 바친 전봉준 파트를 통해 갑오농민전쟁의 전개과정을 3페이지 가까이를 할당해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5) 반일의병투쟁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북한 교과서는 갑오농민전쟁 이후 농민군 일부가 산골에 들어가 일제와 봉건세력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멈추지 않으면서 반일의병투쟁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애국적인 선비들도 여러 지방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고 해설되어 있다.

실례를 구체적으로 제출했는데 "1895년 7월 평안도 상원(오늘의 평양시 상원)에서 김원교가 조직한 의병 부대는 상원읍으로 쳐들어 가 악질관리들과 매국노들을 족쳤다. 그 후 의병 부대는 황해도 방향으로 나가 장수산에서 리조정부군(조선왕조 정부군)과 싸우는 한편 인민들에게 투쟁에 떨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한말 국권회복에 앞장섰던 의병부대 ⓒ독립기념관

한말 국권회복에 앞장섰던 의병부대 ⓒ독립기념관

또한 류인석 의병대가 일제와 싸워 충주성을 한달동안 점령했던 사건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애국적인 선비 류린석은 충청도 제천에서 이해 11월에 의병대를 조직하고 다음해 2월에 충청도 중심지인 충주성을 포위공격하였다. 의병대는 일제침략군이 늘여 놓은 전선을 모조리 끊어 놓고 성을 불의에 공격해 발악하는 적들을 소탕한 다음 성을 점령하였다… 적들은 한달동안이나 성을 포위하고 의병들을 소멸하려고 하였다. 성안에는 무기와 탄약, 식량이 떨어지고 마실 물마저 모자랐다. 그러나 의병들과 인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인민들은 자기 집 쌀로 밥을 해오고 탄약과 화살이 떨어지면 집집의 기와장을 내려 적들을 족치게 하였다."      – 고등중학교 6학년 7page

교과서에 따르면 류인석의병대는 '8도의 여러고을에 호소한다'라는 격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에 호응하여 전국각지에서 의병투쟁이 꼬리를 들고 일어났다고 한다.

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과 창, 낫과 같이 '낙후된 것'들이었지만 의병들은 곳곳에서 도시와 마을을 들이치고 일제침략군과 정부군에 타격을 주었으며 친일관리와 그 앞잡이들을 처단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의병부대들은 서울을 포위하고 부산, 원산과 같은 큰 도시들도 위협하였으며 경기도, 강원도 이남지역의 통치체계는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1800년대 말 활발했던 의병투쟁이 어떻게 되었을까?

6) 북한 교과서가 서술한 1800년대 말 반일의병투쟁의 한계

북한 교과서에 따르면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의병투쟁은 1896년 이후 점차 중단되고 의병부대들이 해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북한 교과서는 '봉건유생 출신의 의병장들이 봉건통치배들(조선왕조와 정부관리들)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아관파천을 통해 조선 정부안에 친일파가 밀려 나고 친러파가 득세했다고 판단한 고종은 "난적(정부내 친일파)이 소멸되었다"면서 의병부대를 해산하라는 조칙을 여러번 내렸고 그 이후 봉건유생들이 자발적으로 의병부대들을 해산했다는 것이다.

7) 반일의병투쟁의 재발과 양양

북한 교과서에 따르면 일시 중단되었던 반일의병투쟁은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다시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유를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수많은 침략군을 우리 나라에 들이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침략책동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특히 의병투쟁이 을사조약 날조(강제 체결)로 급격히 양양되었다고 한다.

"1906년 3월 충청도 정산에서 조직된 민중식 의병대는 5월에 1,000여명의 대부대로 일제수비대와 경찰대를 소탕하고 홍주성을 공격점령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헌병기관, 경무서, 우편국 등을 습격파괴하고 10여문의 대포를 비롯한 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노획)하였다."     – 고등중학교 6학년 8page

"이해 6월에는 전라도 순창지방에서 일흔살이 넘는 선배였던 최익현이 자기 집 재산을 팔아 무기와 탄약을 마련하여 의병대를 조직하였다. 홍주성전투소식에서 커다란 고무적 충격을 받은 그들은 순창, 담양, 곡성 등지에서 적통치기관을 들부시며 맹렬히 활동하였다."     – 고등중학교 6학년 8page

"로동자(노동자), 포수들로 조직된 홍범도의병대는 자체로 화승총의 탄약을 만들어 쓰면서 일제와 친일매국노, <일진회>도당들을 연이어 족치었다….1908년 1월에 갑산읍 습격전투를 비롯하여 홍범대의병대는 1907~1908년 8월까지 37차례의 전투를 벌리였다."    – 고등중학교 6학년 8page

1907년(정미년)에 다시 일어난 의병의 모습 ⓒ 국가보훈처

1907년(정미년)에 다시 일어난 의병의 모습 ⓒ 국가보훈처

"당시 인민들은 홍범도의병대의 눈부신 활동을 찬양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홍대장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량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눈과 빈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 에헹 에헹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 고등중학교 6학년 8page

8) 의병부대의 서울공격시도의 실패와 의병투쟁의 한계

북한 교과서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활동하던 이인영 의병장은 각지 의병부대들에게 연합하여 서울로 쳐들어갈 것을 호소하였다고 한다.

양주에 1만명의 의병부대들이 모였고 서울총공격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인영 의병장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감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서술되어 있다.

결국 의병들의 서울공격계획은 실패하게 되었고 일제의 토벌이 강화되어 의병들은 중국동북지방과 연해주지방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 교과서는 의병들이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이 투쟁이 류인석, 최익현, 이인영과 같이 봉건사상을 가진 유생출신의병장들에 의해 지도되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왕이 의병부대를 해산하라고 하면 해산해버린다거나 아버지 장례 때문에 큰 싸움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행동 등을 지적한 것이다.

의병운동 당시 의병장들. 왼쪽부터 민종식, 최익현, 임병찬.

의병투쟁 당시 의병장들. 왼쪽부터 민종식, 최익현, 임병찬. ⓒ 독립기념관

둘째로 의병투쟁이 통일적인 지휘체계에 따라 진행되지 못하고 분산적으로 벌어진 것이 한계였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문제점으로는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고 미영 제국주의자들과 조선왕조와 정부관리들도 일제와 협력하여 의병투쟁을 탄압한 것을 꼽는다.

그렇다면 반일의병투쟁은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북한 교과서는 반일의병투쟁이 커다란 역사적 의의가 있다면서 그것은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조선인민의 높은 반일애국정신을 보여 주었으며 당시에 벌어진 여러 가지 형태의 반일투쟁들을 힘있게 고무했다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남한대토벌 작전시 끝까지 항전한 의병장들의 모습 ⓒ 국가보훈처

남한대토벌 작전시 끝까지 항전한 의병장들의 모습 ⓒ 국가보훈처

당시 신민회, 애국문화운동, 언론출발활동, 교육운동, 국채보상운동 등의 다양한 형태의 반일투쟁이 있었는데 이들을 추동한 것이 바로 의병투쟁이라는 것이다.

(계속)

※ 관련기사 : 한국사 교과서 논란, 북한 교과서에는 일제 강점기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① http://nktoday.kr/?p=8518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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