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56]천리마운동과 강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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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추석날 낮의 평양 거리는 명절이라 한산한 편이지만 친지들을 방문하러 오가는 인민들로 큰길에는 버스와 승용차도 제법 다니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모란봉을 향하여 가는 동안 시가지를 지나며 차안에서 추석날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저만큼에서 개선문이 보인다. 내가 25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저 개선문을 함께했던 미주동포들과 답사하며 설명을 들었는데 오늘은 그 아래로 차를 타고 지나친다. 개선문 윗편 벽에는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새겨져있다.

개선문 아래로 지나면서. ⓒCJ Kang

개선문 아래로 지나면서. ⓒCJ Kang

차가 모란봉으로 다가가는데 저쪽 언덕에 천리마 동상이 세워져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기에 여기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을 참고로 사용한다. 천리마 동상에 대하여 김미향 안내원에게 질문을 하자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전쟁 때 평양은 인구가 40만이었는데 미국은 폭격으로 폭탄을 42만개나 퍼부었다고 한다. 인구 한 사람당 폭탄을 1개 이상 사용한 셈이니 그 폭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하였겠는가. 건물 하나, 집 한 채도 성하게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북부조국 인민들이 미국을 철천지 원수라고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폭격으로 땅위의 모든 공장들도 파괴되었다. 그렇지만 전후복구사업을 늦출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철강이었다.

"어려울 때 인민을 찾아가는 것이 수령님의 방식이었습니다"라며 김미향 안내원은 모란봉 주차장에 도착하여 공원길을 걸으면서 계속해서 설명을 해준다. 강선제강소를 찾아간 김 주석이 철강 노동자들 앞에서 현재 연간 선철 6만 톤을 생산하고 있는데 거기서 1만 톤만 더 생산할 수는 없겠는가하며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고 호소하였다.

얼마나 나라 사정이 어려우면 김 주석이 직접 찾아와서 노동자들에게 철강증산을 부탁하였을까하고 노동자들은 9만 톤을 생산하겠노라고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피땀흘려 생산에 매진한 결과 그해에 무려 12만 톤의 선철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렇게 철강생산을 두 배로 늘이게 된 것을 보고받고는 김 주석은 "이것이 바로 천리마다. 남들이 한 걸음 걸을 때 우리는 천 걸음을 걸어야 한다"라며 온 나라에 호소하였는데 1956년에 일어난 이 천리마운동은 북부조국 최초의 대중운동이었다고 한다. 천리마운동으로 온 인민이 떨쳐일어나 혼신을 다하여 사회주의공업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미국이 북부조국에 대하여 백년이 걸려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고 큰소리를 쳤다는데 이 운동으로 전후 14년 만에 목표로 했던 공업총생산량을 달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부조국의 대중운동은 막연하게 생산만 증가시키는 운동이 아니었다. 바로 인민을 각성시켜 인민들 스스로가 주인된 마음으로 개인(하나)은 전체를 위하여, 그리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산다는 의식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의식혁명을 통하여 각자 온 힘을 쏟아부으며 전후복구사업을 해낸 것이다.

나라를 일으켜세우는 기초를 외부의 물질적인 요인에 두지 않고 바로 인간의 사상혁명에 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으로 기존의 생산수단은 크게 파괴되었고 외부세계로부터의 지원은 너무도 제한되어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 인민의 의식혁명을 일으켜 전후복구사업을 해결해낸 것이다.

북부조국 최초의 대중운동인 천리마운동은 그 뒤를 이어서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사상, 기술, 문화혁명), 숨은영웅따라배우기운동, 희천속도정신, 강계정신창조운동, 라남의 봉화 등으로 이어졌는데, 북부조국이 강대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고립되어 그야말로 제2의 고난의행군 시절을 당하였을 때에도 이와 같은 대중운동은 그런 극단적인 시기를 돌파하고 인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부여하는 운동이 되었다. 이런 대중운동은 어떤 지역에서 먼저 시범을 보여주게 되고,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되어지는데 그 모든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김미향 안내원이 말해준다.

내가 근래에 읽게 된 '강계정신'이라는 북부조국의 소설로 바로 위에 든 강계정신창조운동을 깊숙히 알게 되었는데 북부조국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 식량의 터무니없는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전기공급이 거의 끊어지게 되어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곳이 바로 자강도였다.

그런 자강도에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관심을 보이면서 소형수력발전소 건설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전기난을 해결하도록 지침을 내리자 온 인민의 각성과 단결로 한 두개도 아니고 무려 29개의 소형수력발전소를 6개월만에 건설해가는 과정을 읽는 중이다.

북부조국에 대한 경제봉쇄로 인하여 자강도의 공업시설들은 전기부족으로 노동자들이 일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생산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공업생산이 중단되면 자강도의 인민경제가 도저히 회복할 수없음에 그 대책으로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전기생산을 위하여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자니 시멘트가 필요한데 만포시멘트공장에선 석탄이 공급되지 않아서 시멘트 생산이 중단되고 있었고, 석탄 탄광에선 전기공급이 끊어져 침수된 갱도의 물을 퍼낼 수 없어서 석탄생산이 중단된 그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 맞물린 어려움을 자체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고난의 행군 극복을 인민이 지혜를 모으고 의식혁명을 통하여 자주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그러니 최악의 조건이었던 자강도가 강계정신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것이 모범이 되어 그곳보다 나은 환경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 대중운동이 확산되고 강계정신으로 무장한 인민들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노력하여 드디어 고난의 행군을 마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5.5.23.)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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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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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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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CJ Kang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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