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차 이산가족상봉 기념1]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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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극적으로 남북이 합의한 8.25 합의문에는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어 무박 2일 회의 끝에 지난 9월 8일에는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추석이라는 민족의 명절을 맞아 합의되어 진행되는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무사히 성사되길 바랍니다.

 

이산가족이란 가족 구성원이 본의 아니게 흩어짐으로써 서로 만날 수 없게 된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산가족이 만들어진 것은 분단이 주요 원인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시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월북을 하거나 월남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떠나는 경우도 많았고 전쟁통에 가족을 잃어버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요구는 이른 시기부터 있어왔습니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더 이상 추진될 수 없었습니다.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에야 이루어집니다. 1985년 8월 제8차 적십자 회담에서 남북은 광복 40주년을 계기로 이산가족 고향 방문을 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9월 20일 오전 9시 30분, 남과 북은 '남북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라는 이름으로 판문점을 동시에 통과해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하지만 고향방문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상봉은 서울과 평양으로 한정되었고 그마저도 생사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각각 방문단 50명 중 남측은 35명, 북측은 30명만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공공누리에 따라 공감포토의 공공저작물 이용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공공누리에 따라 공감포토의 공공저작물 이용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공공누리에 따라 공감포토의 공공저작물 이용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공공누리에 따라 공감포토의 공공저작물 이용

1985년에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진 것에는 1983년 KBS에서 진행했던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453시간 동안 진행된 이 특별방송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봉신청을 했고 1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상봉했습니다. 이 특별방송은 한국전쟁 후 가족들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야 했던 이산가족의 아픔에 불을 지핀 계기였으며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상봉이 논의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5년 이후 15년 동안 이산가족상봉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나서 본격적인 상봉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지 2달만인 2000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15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2000년 11월, 2001년 2월 연속해서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 상봉은 지금처럼 금강산에서 상봉모임이 진행된 것이 아니라 남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남북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4차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는 북한 측의 요구에 따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2002년 2회, 2003년 3회, 2004년 1회, 2005년 2회, 2006년 2회, 2007년 2회 이렇게 매년 약 2차례씩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습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화상상봉도 이루어졌습니다. 2005년 8월 15일 1차 이산가족화상상봉이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2005년 3차례, 2007년 4차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이후 남북관계는 점차 경색되었고 결국 이산가족상봉도 2009년 1차례, 2010년 1차례만 열리고 중단되었습니다. 중단되었던 이산가족상봉은 무려 3년 5개월이 지난 2014년 2월 재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이산가족상봉이 정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2010년 18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사진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2010년 18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사진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현재 이산가족으로 등록된 사람은 약 12만명, 이중 19차례의 대면상봉과 7차례의 화상상봉을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난 사람은 약 2만명입니다. 이런 속도로 상봉이 이루어진다면 너무나 시간이 오래걸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산가족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봉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산가족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06년만 해도 등록된 이산가족 12만 5천여 명 중 사망자가 약 2만 8천 명가량이었으나, 2015년 7월에는 6만 3천 명에 달해 이산가족의 절반가량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된다고 합니다. 남은 생존자 중에서도 80대 이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해 앞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2009년 17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사진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2009년 17차 이산가족 상봉 당시 사진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이번 8.25 합의에서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만큼 정례화가 이루어져 이산가족상봉이 조금이라도 더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동훈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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