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42]원산에서의 옛추억과 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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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평양 주변을 비롯하여 멀리 원산까지 내내 이용한 차는 현재 북에서 생산하는 평화자동차였는데 차에는 내가 별로 관심이 없어 모델 이름도 따로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마식령스키장을 출발하기 직전에 일부러 차를 넣어서 사진을 찍은 것이 있어 여기서 나누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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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의 겉모양은 꾸밈없이 단순하였는데 엔진 소리도 조용하였고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에도 승차감이 좋았다. 내가 89년 평양축전 때 보았던 수많은 벤츠 자동차들은 이번엔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아마 예전엔 고급 차들을 외국에서 수입하던 것을 이젠 직접 생산하는 평화자동차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초가을이라 하루해가 길긴 하였지만 원산시내로 들어설 무렵엔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달리는 차에서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들로 보이는 주거지의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라 그리 산뜻하지는 못하다. 사진들은 평양 원산간 고속도로 곁의 주거지인데 아주 넓은 지역에 빼곡하게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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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을 곳은 동명호텔로 바닷가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은 지 제법 오래된 것같다. 5층에 노 박사님과 함께 묵을 방을 배정받았는데 그리 크지 않은 방이지만 바다를 향한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창가에 다가서니 이미 해가 떨어졌지만 아직은 탁 트인 동해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여기저기 멀리 정박해있는 무역선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호텔 바로 옆에서 거의 2km 가량 되어보이는 기나긴 방파제가 멀리 보이는 작은 섬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산책을 하거나 낚싯대를 든 사람들도 보인다.

내가 25년 전 평양축전으로 방문하였을 때 금강산으로 가기 전에 원산에서 하루를 묵었고 금강산에서 이틀을 보낸 후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루를 더 묵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우리들이 묵은 곳은 이곳 바닷가의 다른 호텔이었는데 옛 사진들을 들춰보니 바로 저 방파제를 그때도 아침에 잠깐 들렀다가 우연히 만난 원산의 여중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었었다. 내가 사진을 찍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두 기쁘게 포즈를 취해주었었다. 그때 그들이 중학생이었으니 지금은 모두 40이 된 아주머니들로 변하여 이곳 원산 어디쯤에서 살고 있으려나. 이곳 방파제를 다음날 아침 일찍 산책하게 되는데 아침에 찍은 깨끗한 사진들을 다음 방문기에서 소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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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산의 극장에서 금강산 나무꾼과 선녀를 주제로 한 가극을 보았는데 지방도시의 공연이었지만 평양에서 본 공연에 비하여 아무런 손색이 없는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그때 그 가극의 주제가로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네’라는 노래가 아주 인상에 남아 녹음테이프를 구입하여 들었었는데 이번 방문에선 다시 CD 몇 장을 구입할 때 그 노래를 포함시켰다. 

원산에서의 그때 일정 가운데 작은 유람선을 타고 원산 앞바다로 나가 바람을 쐬며 관광하는 것이 포함되었는데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원산시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또한 이어서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날 시원한 날씨였지만 북부조국 아름다운 해변에서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해수욕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우리들 모두 바닷속에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를 하였고, 파라솔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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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와 며칠 동안 호텔에서 함께 방을 쓰던 오십대의 재미동포 의사 한 분과 내가 안내원의 동반 없이 어둠이 내린 원산 시내를 산책하기로 하고 나섰다가 고급중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남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온 동포라고 소개하고는 대화하였는데 마침 한 학생이 들고 있던 영어 교과서를 보고는 그 동포 의사가 교과서를 잠깐 보자고 하여 살펴보니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수준의 내용이었다. 그 학생에게 읽고 해석해보라고 하니 줄줄 읽고는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하였으니 그 학생은 나의 학창시절때보다 더 나은 실력이었다. 

한데 잠깐 동안 우리가 학생들과 대화하는 사이에 지나가던 수십 명의 원산 인민들이 우리들을 둘러싸고는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래 그 분위기가 너무도 어색해서 얼른 아이들과 헤어지고는 호텔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생각해보니 북을 방문한 우리들이 그곳 인민들의 생활이 궁금하여 그렇게 만나 대화하고 싶어 하듯이 그곳 인민들 또한 조국을 찾은 해외동포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것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그래 한 두 사람이 멈춰서 우리를 주시하던 것이 무슨 구경이 있나하고 지나던 다른 사람들도 주욱 모여든 것이었다.

북부조국에선 아무리 조국이라지만 우리들이 평생을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므로 무턱대고 아무 곳이나 혼자서 다니는 것보다는 안내원이 함께해주는 것이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임을 그때 깨달았었다. 

북에서 방문객들에게 안내원이 함께 하는 것에 대하여 남쪽에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의 그 경험이 그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될 것 같다. 우리같은 해외 동포 방문객들은 호텔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 아니니 혼자 다닐 수는 있겠지만 아침산책이나 번화가에서 잠깐 걷는 일 외에 방문객 스스로가 발길 내키는대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자본주의 방식의 행동을 한다면 그와 마주치는 인민들의 일상에도 불편을 주게 되는데다 자신이 구경거리가 되는 황당한 일도 감수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건 손님을 맞이한 북부조국 당국이나 방문객 자신 모두 그리 편안한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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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남한의 매스컴에선 북의 안내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감시원 정도로만 여기는데 자본주의 세상에 깊이 물든 사람들이 북에서 취하는 엉뚱한 행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감시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니 안내원이 때때로 감시원 역할을 한다면 그것 또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한데 내가 25년 전이나 이번에도 수많은 사진들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은 것으로 본다면 안내원의 기본적인 임무는 역시 안내를 맡아서 편안하게 여행과 답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남부조국에서 북부조국의 인민이나 일본의 총련계 동포가 방문할 때를 떠올려보면 북에서의 안내원이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작년 가을의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여한 북의 선수단과 임원들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왔던 총련 소속의 조선신보 로금순 기자도 남부조국에선 숙소와 경기장 외엔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건 근래에 재미동포로서 남북을 오가며 많은 교류를 해온 어떤 분에게서 다시 확인한 사실이다. 

그는 인천을 방문하여 북부조국 선수단에게 간단한 선물을 전달하고 그동안 북을 방문하면서 안면이 있는 임원진들을 만나보려고 하였는데 국정원과 경찰 등 여러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절대로 면담을 금지해 만나볼 수도 없었고 선물조차 전달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남과 북을 수없이 왕래하면서 양쪽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그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잠깐 북의 선수단을 만나는 것조차 금했다고 하였다. 

이렇게 남쪽 또한 철저하게 남부조국을 방문한 북의 동포들이나 총련계 동포들이 바깥출입은 커녕 잠깐의 면담을 하는 것조차 막고 있는 것이니 북에서 안내원 없이 다니지 못하게 한다면서 안내원은 감시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남에서는 북의 인민이나 총련 동포가 방문하였을 때 북보다 훨씬 더 자유를 구속하고 감시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북의 손님들에게 외출 자체를 금하기도 했지만 만일 어디든 관광을 시켜준다고 해도 남쪽에서 미리 정해놓은 곳만 보여주지 북의 동포들이나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며 행동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모두가 분단된 조국의 비극이다. 아직은 서로 감춰야 할 것이 많고 드러내기 부끄러운 것이 많은 것이다. 남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고 북은 북부조국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편견과 오해로 현실과는 매번 정반대의 소리를 해대는 것에 이미 질렸을 것이다. 같은 민족끼리 이 무슨 비극인가? 한 민족이란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어야 한다. 이제 서로 부둥켜안고 화해의 눈물을 흘리며 하루속히 그 벽을 허물고 우리 스스로 통일을 이루는 것만이 이 비극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북부조국을 방문하는 해외동포들을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며 여러 곳을 답사하도록 주선하고 안내하느라 수고하는 북부조국 당국과 모든 안내원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5.2.18.)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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