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29]만경대협동농장을 찾아서2

[CJ Kang 방북기29]만경대협동농장을 찾아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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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강당에서 응원연습을 하는 농장원들을 잠깐 들여다보고는 왼편에 위치한 제법 넓은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 방의 사방 벽면은 사진과 그림과 도표들로 가득한데 바로 이곳 만경대협동농장의 지난 역사를 잘 설명해놓았다. 나처럼 북부조국의 농촌을 제대로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찾은 사람에겐 아주 중요한 자료들이어서 사진으로 그 현장을 잘 남겼다.

만경대협동농장은 이름 그대로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만경대 주변에 위치한 농장이다. 이곳 농촌이 김 주석의 고향이라는 조건과 농민들의 자발적인 개혁의지는 해방 후 처음부터 이곳이 전체 북부조국 농촌의 혁명적인 변화를 선도해서 이끌어나간 모범이 되는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김 주석이 이곳을 1945년부터 1985년까지 40년 동안 모두 44차례나 현지지도를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곳을 모두 15번, 김정숙 여사도 6번을 찾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서 1985년 이후엔 북의 지도자가 이곳을 방문하지 않은 것을 고려해보면 이때쯤은 이곳 만경대협동농장이 이미 북부조국의 모범이 되어 이후의 30년 동안은 다른 필요한 곳을 현지지도한 것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주석은 해방 후 일이 바빠 고향을 바로 찾지 못하고 1945년 10월 14일에야 만경대를 찾아 조부모님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고 그 다음날인 10월 15일에 남리 인민들과 상봉하였다고 한다. 내가 만경대 고향집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자료들도 여기에 있다. 당시의 신문기사로 인민들이 열렬히 환영한 것과, 김 주석이 인민들에게 만경대를 살기좋은 고장으로 만들고 새나라를 세우는데 힘써주길 당부하는 내용, 만경대 고향집을 1946년 크게 보수한 것과 1959년 5월 9일에 원상대로 복구한 내용, 그리고 김형직 선생과 강반석 여사의 유해를 고향땅으로 이장한 내용도 적혀있다.

내가 크게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싶은 부분은 1946년의 토지개혁이었다. 토지개혁은 북부조국 전역에서 동시에 결정되고 실행되었는데 1946년 3월 한 달 동안에 모든 지주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해서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였다고 들었는데 그 현장 가운데 핵심적인 곳을 지금 찾아와 당시의 상황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이곳 만경대 일대의 지주가 소유한 토지는 전체의 85%가 되었고 그 외 부농, 중농, 빈농, 반소작 반자작으로 구분되는 토지가 나머지를 차지했는데 그 가운데 지주 소유의 562정보를 포함하여 578정보를 무상으로 몰수하였다고 한다. 몰수한 토지 가운데 570정보를 380여 농가에 무상으로 분배하였으니 이건 천지개벽과도 같은 일이다. 

조상 대대로 지주의 땅을 붙이며 가혹한 지대와 세금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던 농민들이 해방이 되고 바로 다음 해인 3월 한 달 동안 이렇게 나라에서 농사지을 땅을 주었으니 그 기쁨이 어떠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이제 새봄이 와서 논밭에 씨뿌릴 때가 되었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주의 땅이 아닌 자신의 땅에 파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니 농민들은 그야말로 해방의 기쁨과 동시에 새로 땅을 갖게 된 기쁨까지 함께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 토지개혁이야말로 북부조국 농민들에겐 천지개벽을 맞이한 것과 같은 기쁜 일이 아니었을까? 

한 농가당 대략 1.5정보의 땅을 분배받았는데 이는 4,800평에 해당한다. 논으로 환산하면 200평이 한 마지기니 한 농가당 24마지기의 땅이다. 내가 어렸을 때 보통으로 사는 친구들의 세대 당 보통 10마지기 정도의 땅을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땅을 갖게 되는 것은 중농 혹은 부농에 속한다. 북부조국 전체로 보아서 만경대는 인구밀도가 높았으므로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에선 더 많은 땅을 분배받았을 것이다. 우리 역사상 나라에서 이렇게 넓은 땅을 인민들에게 그저 준 적이 있었던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일이 아닌가?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들에게도 일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토지는 똑같은 넓이로 공평하게 다시 분배했다고 한다.

이런 토지개혁이 위에서 지시한다해서 저절로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도표에서 그 비밀을 얼마간 알 수 있어 여기 옮겨본다. 먼저 당세포와 인민위원회를 조직한 것이다. 1946년 1월에 남리에 공산당세포를 조직하였고, 이후 1946년 3월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고 적혀있다. 이어서 추자리, 송산리, 내리에도 당세포와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다고 되어있다. 또한 도표에 의하면 1946년 3월 8일에 6명의 위원으로 농촌위원회를 조직하였고, 토지개혁을 실질적으로 집행한 것은 농촌위원회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농촌위원회가 그 일을 할 수 있기까지는 김 주석의 뜻을 받들어 온 나라의 당세포와 인민위원회가 뒤에서 받쳐주었고 저 도표에서 ‘토지개혁을 위한 투쟁’이란 제목이 보여주듯 그 일에는 인민들의 단합과 투쟁이 있어 가능하였을 것 같다. 새로 나라를 세워나가면서 이렇게 미리 온 나라의 토지를 지주들로부터 몰수하는 일은 제법 큰 저항이 따랐을 것이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한 달 만에 이뤄낼 만큼 이미 북부조국 전역에서 김 주석은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임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토지개혁이 이뤄진 것이 46년 3월이니 이 시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지 겨우 7달 만의 일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소련의 군대가 주둔해있는 상황에서 소련식이 아닌 김 주석의 뜻대로 북부조국이 토지개혁을 달성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만경대협동농장을 방문한 지 며칠 후에 김철주사범대학의 정기풍 교수가 평양호텔로 찾아와 면담을 하였다. 정기풍 교수로부터 내가 들은 북부조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토지개혁에 관하여 대화한 것을 여기 미리 옮겨본다. 

정기풍 교수에 의하면 북부조국이 해방후 토지개혁을 실시할 때 처음부터 소련식의 꼬르주(콜호스)라 부르는 집단농장으로 하자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일성 주석은 우리나라의 농민들이 조상대대로 자기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지주의 소작농으로 한 많은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농민들에게 새나라는 무상으로 땅을 주어서 일단은 그 한을 풀게 하자고 했다고 한다. 아무런 농자금도 없고 농사를 지을 도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농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나라에서 돈과 비료를 대부해주고 농사를 지을 도구들도 제공해주었는데 자신의 땅이 생기자 농민들은 그야말로 열심히 농사를 지어 크게 수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해 가을의 작황에 따라 나라에 20%~30%만 바치고 나머지로 곳간이 가득하게 되자 모두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름이 김재원이라는 한 농부는 너무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소달구지에다 쌀을 가득 싣고는 김일성 주석의 집으로 찾아갔다고 했다. ‘나라가 우리 인민에게 이렇게 잘 살도록 해주는데 우리 인민이 가만히 있어서는 되겠는가? 지금 나라를 새로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많고 할일도 많은데 우리들이 먹고 남는 쌀을 나라에 바치자’면서 애국미 운동이 전국적으로 불타올랐다는 것이다. 인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일으킨 이 애국미 운동이 새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토지개혁을 통하여 농민들에게 땅을 무료로 나눠주어서 개인농으로 시작한 북부조국의 농촌은 이후 농민들 각자의 필요와 나라의 권유에 의하여 협동농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 부분은 내가 미국 땅에서 개인농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있었고 개인농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기에 협동농장으로 진화하고 발전해나간 북부조국 농촌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다음 회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자. (2014.12.8.)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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