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런던 장애인 올림픽 출전은 기적이었어요” – 신영순 대표 인터뷰②

“북한의 런던 장애인 올림픽 출전은 기적이었어요” – 신영순 대표 인터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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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북한 장애인 체육이 없었습니다. 제가 조선장애자보호련맹과 알게 된 이후 지원 사업을 하게 되면서 장애인체육, 예술을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어요. 2006년 12월에 최초로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지금은 장애인아시안게임으로 대체)에 처음으로 국제부장이였던 김문철 부위원장하고 리광선 서기장과 부원 등 4명을 제가 모시고 함께 참관을 갔어요.

국제 올림픽위원회와 아시안 조직위원회에서 계속 북한을 (장애인대회에)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었는데 북한은 2006년 당시에는 장애인체육이 전혀 준비가 안 되어서 가입을 할 수가 없었죠.

그 이후에 제가 2007년부터 장애인 체육용품들을 북한에 보냈어요. 긴 훈련 없이 할 수 있는 것 활쏘기(양궁), 역기, 탁구, 마상, 휠체어 마라톤 같은 것을 샘플로 하나씩 보내주어 장애인 체육이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있었던 장애인 아시안게임 때도 참관을 갔습니다. 그 때 탁구로 유명한 리분희 씨가 같이 갔죠. 북에서 6명, 저까지 7명이 갔어요. 그런데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 얼마 전에 연평도 사건이 일어나 약속했던 지원이 끊겼어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금품을 모두 팔아서 차비와 경비를 준비하여 중국에 함께 갔어요. 약속을 지키고 남북의 평화의 길이 다 막히지 않도록…

아무튼 그 때 광저우에 함께가서 리분희 씨가 경기를 보고 “야 우리도 이거 해야 되겠다” 이러더라고요. 리분희 씨 외아들이 장애인이에요. 그 때 아들이 17살이었는데, (리분희 씨가) 장애자 엄마로서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마음고생을 많이했다고 하더군요.

광저우 대회 참관하기 전에 김문철 부위원장이 리분희 씨에게 장애인 탁구 코치를 부탁했는데 리분희 씨가 고민 많이 했데요. 남쪽에 현정화 씨도 의식하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사람인데 장애자 코치로 나타나기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광저우 아시안게임 가서 보고는, “이건 보람있고 인간의 자아실현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거예요.

그래서 리분희 씨가 평양으로 돌아가자마자 2011년 8월 조선장애자체육협회 만들어서 북한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어요. 그리고 2011년 12월 7일부터 9일까지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총회가 북경에서 있었는데, 그 총회에서 북한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 처음 가입을 하게 됐습니다.

가입하기 위한 서류가 복잡한데 그걸 준비하는 역할을 중간에서 다 했습니다. 이메일을 북한이 직접 IPC에 보내지 못하니까 그런 걸 많이 도와줬죠. 그리고 전용관 교수님이 연세대학교 교수시면서 동아시아 올림픽위원장이신데, 많이 도와주시고, 중간역할을 다 해 주시고, 저는 북한하고 중간역할을 또 하고… 그래서 무난히 2011년 12월에 IPC에 가입이 됐어요.

북한이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는 과정이 정말 기적 같았다고 들었습니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고 나서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북한선수들을 참가시키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비행기 비용이나 유니폼 이런 것도 해외동포들과 <국제푸른나무>에서 지원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저희 <국제푸른나무>에서 2012년 3~4월에 북한 선수들을 베이징 장애자 올림픽 선수촌으로 전지훈련을 하게끔 추진했거든요. 나와 있는 동안 연습도 하고 서류준비도 하고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1달 정도 늦어져서 5월 4일에 중국 베이징으로 전지훈련을 나오게 됐어요. 그렇게 5월에 나와 보니 <2012년 런던장애인올림픽> 예선전이 거의 다 끝난 거예요.

원래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든지 뭔가 실적이 있어야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데, 북한은 새로 시작했으니 그런 게 전혀 없는 거죠. 그래서 예선 준비하려고 전지훈련을 나왔는데 (예선전이 모두 끝났으니)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보치아, 마라톤 여러 가지 준비 다했는데 소용이 없고 탁구도 4월에 다 끝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실망하고 있는데,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죠. 수영 종목의 마지막 예선이 베를린에서 6월 25~30일에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빨리 책임자들을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예비회담에 보냈죠. 여기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나라,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이 와서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론하고 협력을 해주는 회의였거든요. 북측 책임자 두 분을 빨리 보내서 회의에서 사정을 이야기 하니 그 쪽에서 나온 답이 “그러면 수영선수가 베를린에 예선전에 참가해서 10등 안에 들면 와일드카드 하나를 주겠다” 고 이런 답을 해 준겁니다. 희망이 좀 생긴 거죠.

그래서 부랴부랴 수영 예선 준비하려고 보니 두 선수 중 한명은 15살이라 나이 미달로 예선전에 나가지 못하고, 또 한 선수는 림주성이라는 선순데 왼팔, 왼다리가 없고 수영을 한 번도 안 해본 청년이었어요. 심지어는 물에도 안 들어가 본, 완전히 맥주병이었죠. 근데 어쩌겠어요? 5월 4일부터 이틀간 상황을 브리핑하고 6일부터 물에 집어넣고 계속 훈련만 했어요. 바라볼 건 그 사람 하난데… 3일 동안 물에 뜨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걸 보니 제가 너무 기가 막혀가지고…

저는 다른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야돼서 저는 림주성 선수가 물에 뜨고 5m 가는 걸 보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해가지고 베를린 가서 예선전을 한다는 것, 이건 도저히 안되는 거 아닌가? 기막힌 현실이였죠. (웃음)

하여튼 림 선수를 5월 6일부터 6월 20일까지 중국 코치를 붙여가지고 맹훈련을 시켜서 베를린에 보냈습니다. 베를린에 갔는데, 정말 거기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지요. 림주성 선수가 출전한 세 종목 버터플라이 50m, 자유형 100m, 50m 다 10등 안에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기적같이 와일드카드를 딴 거예요.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나서 북한 선수단이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같이 북측 대표단 유니폼 입고 23명이 10월 25일 평양에서 출발했어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관 1명이 현지에서 합류해 24명이 함께 했죠. 저는 특별히 유니폼에 태극기와 성조기도 인공기와 함께 달고 동행을 했습니다!

임주성 선수는 등수 안에는 못 들었지만 놀라운 성과를 냈어요. 임주성 선수는 왼쪽의 팔과 다리가 둘 다 없는데, 장애 등급이 높이 돼서 두 팔이 있는 선수들이나 한 다리가 없거나 한 팔이 없는 그런 선수들과 했거든요. 임주성 선수는 올림픽에서 본인의 신기록도 세웠어요. 다른 선수에 비해 약 5m 정도 늦게 들어왔는데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과정도 조마조마 하셨다고요?

이번 아시안게임에도 남북관계가 너무 안 좋아서 북한이 내려올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가 6월에 북에 갔을 때 아시안게임 참가문제로 “같은 민족인 조선반도 안에서 하는데 와야지 않냐”고 했더니, “정세도 안 좋고, 영국에 장애인예술단 가는데 가겠습니다”라고 해서 제가 “아니 우리민족 땅에서 아시아 잔치를 하는데 같은 민족이 참가 안하면 어떻게 하냐”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참가를 성사시키기 위해 윗분들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설득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북한이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맹인 마라톤, 맹인,수영, 지체장애인 수영과 양궁, 탁구 등 5종목에 장애인 선수 9명을 보내 처음으로 아시아장애인경기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평양에 10월 1일 들어갔다가 10월 8일 나오면서 33명의 대표단 명단을 그때야 가지고 나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11일에 참가단 29명이 인천으로 가는 아시아나 비행기 예약을 하도록, 인천아시아조직위원회에 최종명단을 알려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선수단이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내려오는 것을 추진했어요. 한반도는 70년 세월 동안 마치 허리가 잘려 마비된 장애자의 나라 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상징적으로 육로로 내려오면 잘리고 막혀버린 허리를 잇는다는 그런 의미를 담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열심히 추진해 남측 통일부 장관 허락 서신도 받아 북에 전달했으나 <풍선 문제>로 아쉽게 실현이 안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북한 측에서 자체적으로 유니폼 등 여러 가지 지원을 다 했어요, 런던 올림픽 때는 처음 준비하다보니 생소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다면 이번에는 어느 정도 경험도 있고 그랬으니까요.

<국제푸른나무> 후원자들이 응원단도 만들었습니다. 참가단이 입국할 때 인천비행장에서 환영도 하고 북측장애인 선수들의 게임에 찾아가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수영과 탁구에서 동메달도 2개를 획득한 성과도 거두었어요. 그래도 이번 대회가 긍정적으로 남북 화해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요?


(3부로 이어집니다)


정리 : 이동훈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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