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4]북의 인민들의 기본 생활을 예습하다

[CJ Kang 방북기4]북의 인민들의 기본 생활을 예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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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4

미국에 계신 CJ Kang께서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뜻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싣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나누면서 대화하는 가운데 목란관의 봉사원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북부조국에선 서비스 업종의 종업원들을 일반적으로 접대원 혹은 봉사원으로 부른다고 한다. 여러 악기들의 반주가 이어지며 흥을 돋구는 가운데 아리랑을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도 맑고 곱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리랑에다 내가 예전에 듣곤 해서 귀에 익은 북부조국에서 부르는 가사가 맨 마지막에 첨부되었다. ‘저기 저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 섣달에도 꽃만 핀다’ 로 마치자 식당 한 켠을 메운 주로 중국인인 듯한 손님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어서 여러 북한 노래, 중국노래와 함께 한복 차림의 가벼운 춤이 곁들어진다. 도라지타령과 그 율동도 참으로 흥겹다. 이 모든 공연이 지금 이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봉사원들이 직접 노래를 하고, 악기 연주도 하는가 하면 춤도 추는 것라 한다. 

나는 이곳 씨타에 이곳과 비슷한 식당들이 여럿 있다기에 전문적으로 이렇게 공연을 하는 단원들이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찾아와서 공연을 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그렇지 않고 이들은 모두 이 식당의 봉사원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다가 공연을 하고, 다시 공연을 마치고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서빙하는 것이니 무대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 혹은 춤으로 공연하고는 다시 봉사원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북부조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예능교육을 누구나 받아서 악기 한 두개는 모두 다룰 줄 아는데다 노래와 춤 등 자신의 재능에 따라 기본적인 교육을 충분히 받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이런 공연은 꼭 이 식당에서만이 아니라 이후 북부조국의 호텔에서도 다시 그곳 봉사원들로 이뤄진 공연을 경험하였다. 그래 북에는 직장마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넘쳐나서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이 정도의 공연은 어디서나 크게 준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지금 이곳의 봉사원들은 각자가 가진 그 다양한 재능으로 북부조국을 국외에서 크게 알리는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만큼 재능 많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봉사원으로 접대하는 식당이 어디 흔하며, 그 대접을 받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랴? 그런데도 세 사람이 저녁 만찬을 나누고 맥주 3병을 마시고 공연을 관람하는데 드는 비용은 미국의 일반 식당들보다 오히려 저렴하다. 봉사료로 얼마를 내겠다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고객에게 봉사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 아닌 것이다. 돈보다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조국을 알리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 방식으로 그들의 운영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공연이 40여 분 동안 이어진 후 조용해진 시간에 우리 테이블에 다가온 한 봉사원에게 내가 평소에 궁금하게 여기던 북의 인민들의 생활에 관한 것을 직접 묻기로 하였다. 서 있는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이 미안해서 앉으시라고 하니 앉을 수없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그렇다. 그들은 손님을 존중하긴 하지만 그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니 내가 그 여성의 다리가 아플까를 염려해서 앉으라고 하였지만 그건 거절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의 질문은 사실 아주 쉬운 질문이었지만 북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어 대부분의 남부 조국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질문이다. 그래 연관된 질문을 몇 차례 던졌는데도 거침없이 대답해준 그 봉사원이 참 고맙다. 

어떤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정도의 생활을 하고 사는가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아주 간단히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 것으로 족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이 번 돈으로 해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북부조국에선 월급의 금액이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곳 인민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생활하는지가 궁금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만약 내가 어떤 공장의 직원이라면 월급으로 회사에서 얼마를 주는 것으로 그 대부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만 사회주의 북부조국에선 과연 어떻게 해주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이후 북부조국에서 좀 더 상세하게 답을 얻었는데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는 미리 그 부분을 예습한 셈이 되었다.

 

박원심 이란 명찰을 단 그 봉사원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들은 말입니다, 월급 자체는 자본주의 사회에 비교하면 참 작게 받는다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월급으로 살아가는데는 충분합니다.’하고 말문을 연다. 먼저 의식주 가운데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북에선 기업소라 불리는 직장에서 각 개인의 노동량에 따라 따로 쌀 배급표를 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서 탄광 노동자는 힘든 일을 하는 만큼 하루 쌀 400그램의 배급표를 주는가하면 자신처럼 노동량이 적은 여성은 200그램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보급소에 가서 그 배급표로 쌀을 지급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숫자대로 부식표를 지급받는데 그걸로 반찬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생각을 더해보았다. 식량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북에서 저 정도면 충분하게 밥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왜 돈으로 지급하지 않고 쌀을 아직도 배급제로 하고 있을까? 여기서 공평과 평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급제도가 나쁘다는 인식이 우리에겐 은연중 있는 것 같다. 한데 부족한 쌀을 골고루 나눠서 먹기 위해선 배급보다 나은 방법이 있을까? 어떤 약삭빠른 사람이 돈으로 혼자서 백 사람 분의 쌀을 사버린다면 나머지 99명은 돈이 있어도 쌀을 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점매석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그래 쌀이 풍부한 미국에 사는 우리에겐 그저 시장에 가면 돈 십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쌀 한 포대를 살 수 있지만 북부조국에선 귀한 쌀을 배급제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는 것이다. 배가 불러도 함께, 배가 고파도 함께 공평하게 나눠 먹으며 견디는 것이리라. 

이후에 북부조국에서 쌀 생산이 더 늘어나 남아돌게 되어 사고 팔도록 해도 가격이 오르는 일이 없다면 배급제는 저절로 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식량을 국가에서 확실하게 무상으로 보장해준다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렇게 인민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식량을 가난하다고 서방세계에 알려진 이 나라에선 무상으로 모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먹는 것을 모든 인민이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북의 제도에 대하여 자신의 먹을 것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울 점이 참 많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 쌀만으로 해결되는 일인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먹히는 것은 무엇보다 주택이다. 미국의 경우 노동자들이 버는 월급의 30%-40% 이상이 주거비용으로 나간다. 아파트나 집의 월세 혹은 은행의 원리금 상환에 보통 $1,500 에서 $3,000 정도 나가니 이 비용은 실로 엄청나다. 그래 북의 주택문제는 어떻게 하는가고 물어보았더니 주택은 모두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데 그 ‘사용료가 아주 눅습니다’고 답해준다.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하는데 무슨 사용료가 있는가 의아해서 알아보니 우리가 주택을 유지하기 위한 부대비용으로 들어가는 전기, 가스, 상수도 하수도 등 콘도나 아파트의 관리비와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그 사용료로 들어가는 비용은 내가 받는 월급에 비하여 아주 저렴하여 아무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직업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육체적인 문제나 연로한 분 등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따로 배려하여 쌀과 부식을 제공한단다. 그러니까 일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건 참 뜻밖의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실업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 벌이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생존경쟁을 거치면서 공부하고 쉴 틈도 없이 과외로 공부하며, 대학을 나와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몇십 대 일의 입사시험을 치뤄야 하는 것은 이제 관습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북부조국에선 직업을 갖기 위해서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자신의 필요에 맞는 정도의 음식을 지급받으며, 무료로 제공하는 주택에서 살면서 아주 약간의 사용료를 내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육도 의료도 무료로 제공하는 사회다. 나라에서 웬만한 것은 모두 보장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북의 인민 생활에 관한 세세한 사항들은 이후 북부조국 여러 곳을 다니며 그 상황에 맞춰 직접 물어보고 답을 들었기에 이후에 다시 자세하게 그 내용들을 옮기기로 할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박 접대원의 대답이 일단락을 짓게 되자 이번엔 노길남 박사님이 좀 더 재미있는 질문을 한다. 북의 남녀 청춘들은 주로 연애결혼을 하는가 아니면 중매결혼을 할까? 박 접대원은 갑자기 대화가 남녀간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약간 생각을 하더니만 중매 80% 연애 20% 정도 될까요..하더니만 아마 중매 70% 연애 30%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해준다. 노 박사님은 자신이 듣기로는 반반 정도가 된다고 했는데 중매가 더 많은가 보다면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공화국에서 여성이 남성을 결혼상대로 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이 3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박 접대원은 서슴없이 대답해주었다. 첫째 조건이라면 군대를 제대한 남성, 둘째는 노동당에 입당한 남성, 셋째 조건으로 가정환경이라고 하였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였더니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그것 하나로도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증명되며, 당원이 되었다면 그 또한 그 남성이 자신의 삶 보다는 나라와 전체를 위하여 몸을 내던지는 삶을 살아온 증거가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정환경을 살펴봄으로 그가 어떤 부모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아 왔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의 여성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무어라고 답해줄까?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와 그가 가진 재산을 먼저 보지 않을까? 북과 남의 사회가 그 추구하는 것이 완전히 서로 다른 만큼 배우자의 선택 또한 그 사회적인 요인이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박 봉사원에게 '남자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여성의 어떤 점을 보게 될까?' 하고 노길남 박사님이 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에 대해서 박 봉사원은 남자들은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대방이 여성다운가를 볼 것 같다면서 가정환경과 생김새도 중요하게 여기고 또 학력도 살펴볼 것 같다고 답해준다. 이 질문은 아무래도 북부조국의 남자들에게 물어봐야 정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박 봉사원의 대답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는 알 수 없다.

밤이 깊어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이면 25년 만에 다시 찾는 북부조국 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몸은 피곤한데도 북부조국 방문 생각에 쉽게 잠들지를 못한다. (201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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