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북한의 재난관리 실태② 재난관리 사례1 – 룡천역 폭발사고

[연재]북한의 재난관리 실태② 재난관리 사례1 – 룡천역 폭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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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자신들의 재난관리 사례를 언론에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매우 큰 사건의 경우 사실관계만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다. 오히려 언론보다는 문학작품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문학의 특성 상 작품 내용을 모두 사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부족한 정보를 통해서나마 북한이 실제 재난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북한의 대표적인 재난 사건으로 2004년 4월 22일 발생한 룡천역 폭발사고를 들 수 있다. 북한 언론이 이례적으로 사고 발생 이틀 만에 보도를 하고 외국에 구호 요청을 해서 더욱 알려진 사건이다. 룡천역은 평안북도 룡천군에 있으며 신의주에서 평양 방면으로 50km 떨어진 곳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004년 4월 24일 “질안비료(질산암모늄 비료를 뜻하며 질산암모늄은 폭약의 원료로도 쓰인다)를 적재한 화차들과 유조차들을 갈이(교체)하던 중 부주의로 인해 전기선에 접촉해 폭발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고로 룡천소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3, 4학년 학생 54명이 사망하는 등 모두 154명이 사망(6월 말 보도에는 161명으로 증가)하고 1300여 명이 부상당했다. 룡천역 반경 1km 이내 지역은 폐허가 됐으며 2km까지 피해를 끼쳤다. 김창국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004년 4월 27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재산피해는 3억~4억 유로(약 4100억~5500억 원)에 이르며 가옥 1800여 채와 공공건물 12동이 완파됐다”고 밝혔다. 이후 집계 결과에 따르면 가옥 8100여 채, 공공건물과 산업·상업건물 30여 동이 파괴됐다고 한다. 

북한은 로두철 내각 부총리를 중심으로 룡천 피해복구 중앙 지휘부를 만들고 현지에 박경삼 평안북도인민위원장을 중심으로 룡천 피해복구 평안북도 지휘부를, 장송근 룡천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룡천군 재해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구조작업에는 매일 2만여 명이 동원됐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대규모 폭발사고임에도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를 비교적 빨리 밝혀내 공개했다는 점, 중앙과 도, 군단위에 지휘부를 만들었으며 인민위원회가 재난관리를 총괄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룡천역 사고는 당시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로 피해를 복구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의 강진욱 기자는 2004년 4월 30일 자주민보 기사에서 “이처럼 현장을 빨리 수습하고 통제, 관리하는 것이 생소해 보이기는 한다. 분명 아비규환이어야 마땅한데 어떻게 저리 차분할 수 있는지 놀랍기도 하다”고 밝혔다. 2004년 6월 26일자 연합뉴스도 보도에서 “사고 발생 이후 현재까지 153명의 각국 대사관 및 국제기구 관계자가 현장을 방문했으며 이들은 복구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감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부상차 치료도 발빠르게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을 비롯해 일부 나라에서 의료진을 파견하겠다고 했으나 북한이 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거부가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마리아 카스티오 유럽연합 북한문제 담당자는 2004년 4월 29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병원 관계자들이 피해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매우 놀랄 만하고 눈물겹다. 북한 당국은 평소에 유지했던 의약품과 의료장비, 생필품 등을 룡천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신속히 전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위원인 백재중 녹색병원 전문의는 “북한 의료시스템의 기본골격은 1970년대 제3세계 나라들이 배워갈 정도로 나름대로 잘 마련돼 있다”며 “남쪽에서 의료진이 가면 북측 안내원들이 따라 붙어야 할 것이고 숙식도 보장해 줘야 하는데 룡천 참사로 정신이 없는 북측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탈북자 가운데 유일하게 남북한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김평화 씨는 “룡천 주변에 신의주의학대학이 있고 평북도병원 등도 현장치료에 동원될 것이므로 북한의 의료기술이 선진국과 비교할 때 낮지만 부상자 치료에는 큰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2004년 4월 28일 연합뉴스 보도) 

북한을 방문했던 이채언 교수(6.15학술본부 집행위원장)는 평양제일병원장에게서 당시 의사들의 활동상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전국의 모든 의사들이 룡천역 참사 피해자 치료에 매달렸는데 많은 의사들이 화상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피부를 이식용으로 기증했다고 한다. 실제 의사들의 몸을 보니 그 전에도 환자 치료를 위해 여기저기 피부 이식을 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각막을 기증한 의사도 있다고 하는데 ≪의사가 각막을 기증하면 치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병원장은 ≪그 의사는 나이 들어 사무일만 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북한 당국은 소학교 학생들의 피해가 크자 부상을 입은 학생들을 위해 교원들을 병원이나 집으로 파견해 개별지도를 받게 했으며, 통학이 가능한 학생들은 인근 지역 소학교 교실을 빌려 3일 만에 수업을 재개하도록 했다. 또 학교 복구에 최우선 집중해 4개월 후인 9월 1일 새 교사에서 개교식을 갖고 수업을 시작했다. 새로 지은 룡천소학교와 룡천농업전문학교는 본래 위치에서 동쪽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나란히 들어섰다. 신축 학교들은 원래 건물보다 거의 2배 가까이 확장됐고 컴퓨터실, 음악실, 공작실, 도서실을 비롯한 각종 다목적 교실들을 갖춰 평양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의 현대적 학교가 됐다고 한다. (2004년 9월 22일 NK조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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