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정형외과 전문의 오인동 박사 인터뷰 1부

재미동포 정형외과 전문의 오인동 박사 인터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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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는 4월 6일 세계적인 인공고관절 전문의이자 통일운동가인 오인동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인동 박사는 90년대부터 매년 북한을 방문하면서 생생한 북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많은 관계로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1부. 남북관계, 통일관련 부분

1. 선생님께서는 6.15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남북연합방> 통일을 주장하셨는데 기존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나, 고려연방제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1991년에 변형된 북측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지역자치정부를 의미하는 1단계로 된 연방형태의 통일국가를 말합니다. 남측에서 말하는 완전통일은 후대에 맡기자는 북측의 미완성 통일방안입니다.

남녘의 <민족공동체방안>의 첫 단계에서는 신뢰를 쌓기 위해서 교류·협력하는 시기를  거친 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체제와 정부가 다른 두 나라가 연합하는 시기를 거치고 3단계에서 1국가 1정부의 통일국가를 이루자는 방안입니다. 

내가 제안한 소위 고리(Corea)공화국 통일방안이라는 것은 남측 방안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 교류, 협력, 왕래하는 첫 단계를 제도화하자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교류, 협력, 왕래해 왔는데 제도화가 안 되었기 때문에 첫 단계의 의미가 없는 것이나 같게 되었어요. 그래서 첫 단계를 되돌리지 못하게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북에서는 연방을, 남에서는 연합을 주장하니 양측 용어의 뜻을 존중해서 <연합방>이라는 이름을 내가 지은 것입니다. 또 실제적으로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6.15 선언에서도 합의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연합방 단계는 물론 두 나라, 두 정부가 자치권, 국방·외교권을 가지고 있고 그러는 사이에 경제공동체 같은 것을 운영하고 남북평화체제를 다듬어가다가 그 다음 연방 단계에 서는 외교와 군사권을 하나로 하는 두 지역 자치정부제를 하자는 것이죠. 그렇게 가다가 통일헌장을 만들어서 고리공화국, 완전통일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제안한 연합방은 영어로 confederation이고 또 북에서 말하는 연방도 영어로 confederation, 즉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연합이라는 용어를 썼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북의 관료 한 분이 나의 질문에 답신을 보내온 것이 제가 출간한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연합방>에 들어 있습니다. 남녘 통일전문가들이 참고할 만한 북의 자료입니다. 이렇게 남과 북의 통일방안을 고찰해 보고 내가 통일로 가는 길에서 남북이 합의해 쓰자고 제안한 국명을 우리말과 로마자 국호 “고리- Corea” 를 따라서 <고리공화국(Corea Republic)통일방안>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리>는 고구려(高句麗)도 국명을 423년에 고려(高麗)로 바꿨고 그 250년 뒤 왕건의 고려(高麗)가 탄생했는데 이 고려(高麗)의 우리말 발음은 <고리>라는 것이 조선왕조 세종대왕시의 <용비어천가>에도 나와 있다는 사실을 저의 통시역사서 <꼬레아Corea, 코리아Korea> 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2. 남북연합방을 통해 1인당 소득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최근 박근혜 정부가 이야기하는 <통일대박론>과 비교해보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노무현 정부시절에 높아졌던 남녘의 통일의식이  이명박 정부 이래 6년간에 거의 반통일적 의식으로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이런 의식을 어떻게 다시 통일열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난 3년 동안 주장해 온 것이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이었어요. 

남과 북이 경제공동체 운영을 한 10여 년 정도 하면 지금 남녘 1인당 국민소득도 국가총생산량 GDP도 2배 이상이 된다는 것과 북의 인민생활은 급격하게 풍요해 지고 점차 남의 경제 규모의 반을 향해 가게 된다는 통일경제전문가들의 업적을 섭렵하고 나름대로 체화해서 평이한 말로 보여 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남북연합방 평화체제 속에서 세계 5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에 통일지향 민족성원들의 공감은 뜨거웠습니다. 내가 만나는 북녘의 관료·학자들도 대찬성이었는데 남녘 보수세계에는 이런 얘기 해 드릴 기회가 좀처럼 마련되지 않더군요.  

나는 연합방경제공동체 청사진을 따르면 경제대박을 이룰 수 있다고 했지 통일대박 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올 해 초에 대통령이 내 글들이나 책을 보았는지 아니면 다른 분의 책 제목을 보았는지 “통일은 대박이다” 하니 나라 전체가 통일담론으로 덮인 것 같더군요.  통일의식을 다시 일으켜 준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에요. 그러나 통일대박의 내용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공통점이고 차이점을 얘기할 수 없네요. 정략적이라거나 흡수통일 같은 얘기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통일의 길에 들어가 보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정부도 실패한 정부가 될 거에요.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 청사진을 따르면 민족사 최고 경제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이 서면 연합방 평화체제로 이어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이고 또 그렇게 되도록  통일 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겠죠.


3. Korea-2000를 결성하고 통일정책건의서를 남·북 통일 정책 관계자들에게 제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Korea-2000에서 제출한 통일정책건의서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며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지금이 2014년 아닙니까?  Korea-2000을 결성했을 때가 17년 전이었네요. 그 때는 통일의 여명이 밝을 것 같다는 희망, 통일의 길로 가도록  힘써야 한다는 생각에 Korea-2000라는 재미동포 통일연구회를 결성하고 연구위원들이  “남북 두 지도자에게 드리는 통일정책건의”서를  작성했어요. 그 내용은 제가 2010년 출간한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 밖에서 본 한반도>라는 책에 있습니다. 

그 당시는 남북정상회담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앞으로 어떠한 통일 전제조건을 가지고 어떤 원칙에서 또 서로 어떠한 자세에서 남북이 대화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 이러이러한 일이 합의 되어야겠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건의서를 가지고 김대중 정부 출범전인 1998년 1월 서울로 가서 임동원 아태재단 총장과 만나서 양측에 드리는 건의서를 건네고 곧 평양에 들어가 김용순 비서에게도 똑 같이 전한다고  했습니다. 건의서를 읽어보고 나온 임 총장과 다시 만나서 그가 구상하는 정책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평양으로 들어갔습니다. 

북에서는 최승철 해외동포위원회 부국장과 신병철 국장이 나왔기에 양측에 드리는 건의서를 건네고 김용순 비서와의 만남을 다시 확인 요청했어요. 그리고 임동원 총장의 말도 전했지요. 최승철 부국장은 그 뒤 2006년 6.15민족통일축전에 북 대표단장으로 남에 내려 온 활기찬 중견간부였어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 하러 판문점 분계선을 넘을 때 북녘에서 맞이해 평양까지 동행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나는 또 통일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써온 논문집을 임동원 총장과 최승철 부국장에게 건넸더니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리철수 교수가 찾아 왔고 또 정치경제학부 박동근 교수가 고려호텔로 찾아와 만났습니다. 내 글을 다 읽고 나온 박동근 민족통일 연구실장과 하루 종일 같이 지내면서 밤늦게까지 얘기 나눴습니다. 최창식 보건부 부부장과 만나 의학학술교류 재개를 매듭 짖고 1주일 뒤 송별만찬하고 돌아왔죠. 

그리고 2년 뒤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습니다. Korea-2000연구위원들의 기쁨과 보람은 뿌듯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위원들이 건의한 대로 다 했더라면 지금쯤 통일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4. 선생님께서는 남·북·미의 정부 관료들을 다 만나보셨을 텐데 선생님 의견을 얼마나 수용하던가요? 남·북·미 정부 관료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조국의 통일문제에 천착하다 보니 이래저래 남·북·미의 관료들을 만났습니다. 남측의 경우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장관들은 모두 여러 번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조국분단과 전쟁 그리고 대결의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분들이라 이런 저런 의견들에 공감하기 때문에 반갑고 또 서로가 나눈 의견에 큰 차이가 없어서 잘 받아 드려졌습니다. 다만 국민 중 북에 대한 역사인식에 차이가 큰 수구보수층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아서 잘 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통일장관이나 관료들은 만나고 싶어도 별로 그런 기회나 자리가 마련되지 못 하는 것이 또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척이나 다른 견해를 놓고 한 번 만나서 격의 없는 토론을 해 봤으면 하는 데 미국에 사는 관계로 그런 기회도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1990년대 전반과 중반에 통일관료였던 몇 분들을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전현직관료학자회의에 참석했는데 실망했어요. 남녘이 왜 미국에 종속적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남녘 국방관료들이 미국에 와서 말하는 것을 보면 동포로서 수치심을 금 할 수 없더군요. 사대가 절어든 남녘 보수층의 큰 문제입니다.

미국 측 관료들은 때로는 혼자  또는 6.15해외측 미국위원들과 상하원외교위원회를 방문 면담할 때도 국무부에 들어가 마주 앉아 대담하고 건의 할 때도 미국 측 관료들 다 점잖고 여유 있고 우아하게 들어 줍니다. 그렇다고 정책이 바뀌는 것 못 봤습니다. 다만 양심적인 한반도 전문가 몇 분들과 전직 관료들만이 남녘 진보계층 인사들과 공감할 뿐입니다. 미국관료들의 예의 바름이며 점잖음, 능숙함은 과연 세계를 잘 주무르는 패권국가의 실력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국은 여러 면에서 남이나 북 보다 훨씬 큰 나라라는 것이 어느 때는 우리겨레에 도움이 안 되지만 또 그 크기가  남북이 정신 차리기에 따라 해 낼 수 있는 일 또한 많다는 점입니다. 요는 남북 자신이 하나로 되어 목소리 내면 큰 미국이라고 못 이겨 낼 것은 하나 없어요.

한편 북측의 관료들을 만날 때면 답답한 점도 많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좀처럼 개인의 의견을 내세울 때가 없어요. 북측은 집체적인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치열한 토론 끝에 일단 당이나 정부가 정책이나 방침을 정하면 철저하게 그대로 따르기 때문인가 봅니다. 즉 어느 한 관료의 좀 다른 생각이 있었다 해도 일단 수렴과정을 거쳐 결정되어 나오면 그 정책은 모두가 따라야 하는 원칙이 서 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북측 관료들이 다른 의견을 내 세울 것이 없다 보니 나처럼 개인자유주의적 사고에 빠진 사람에게는 답답하게 보일 뿐이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마주 않아서 몇 시간 얘기해도 주로 내 얘기를 열심히 듣고 적습니다. 그리고 북측의 방침에 동의하지 못하는 상대편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는 혼자지만 상대는 언제나 둘이나 그 이상입니다. 이러한 환경이 더 이상 다른 의견 제시에 한계일 수도 있겠지요. 일단 정해진 정책이나 방침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수렴되어 다음 정책이나 방침이 또 나오게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경직성이 한동안 계속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이라는 커다란 나라를 놓고 남과 북을 생각해 보면 참 기이하다는 생각이 해외동포의 입장에서 듭니다. 적어도 천여 년을 한 겨레라며 살아온 남과 북의 겨레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는 생각입니다. 작고 가난하다는 북측은 어떻게 혼자만의 의지로 미국 같은 큰 나라를 마음대로 휘두를 정도가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반면 인구도 배나 많고 경제적으론 수십 배인 남측은 어찌해서 이렇게도 자주성 같은 것이 없을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이게 정말 한 겨레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은 남북을 틀어쥐고 요리하려는 미국에 사는 모국의 동포이기에 눈에 더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남과 북처럼 갈라지지 않은 한 나라인 미국은 세계 만국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남과 북은 심하게 말하면 공통점은 없고 차이점만 크다는 생각입니다. 이점 처절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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