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술을 만나다 "조선화, 너는 누구냐"

북한의 미술을 만나다 "조선화,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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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셀렉션

 

조선화, 너는 누구냐?

다소 말장난 같기도 한 제목의 이 책은 문범강 교수 (미국 조지타운대 미술과) 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아홉 차례 평양을 방문해 연구한 북한 미술에 대한 책이다.

전통적인 동양화를 독특하게 발전시킨 북한의 그림을 ‘조선화’라고 부른다. 서양식의 유화 대신 수묵채색화가 그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북한의 조선화를 ‘세계 최첨단’이라 칭한다. 예술이든 과학이든 ‘세계 최첨단’이라 했을 때 ‘최고’와 ‘독보성’을 기대한다면, 북한의 조선화는 ‘세계 최첨단’이라 할 만하다는 것이다. 흔히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이야기할 때 90년대에 끝난 미술 흐름이라 하는데, 북한에서는 여전히 사회주의 사실주의 예술을 꽃피우고 있다. 북한의 조선화는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해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점에서 세계 최첨단이라 할 만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의 조선화에 대해 외부 세계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식 사회주의 최고’라는 자긍심이 착암기의 압축공기가 되어 끝없이 오직 한 구멍만을 파고 내려가 조선화의 사실주의를 발전시켜 ‘마침내 끓는 마그마를 뽑아 올리게 되었다’고 평한다. 화선지 위에 먹과 물감으로 사실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동양화 최고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한결같이 웃고 있는 농민과 노동자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북한의 그림을 흔히 프로파간다, 선전화라고 한다. 진실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북한에서의 ‘선전화’는 포스터 등에 활용되는 그림으로 ‘조선화’와 별도의 장르로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오히려 조선화가 낭만주의적 감성을 가지고 있고, 그에 반해 21세기 미술이 ‘감정’을 배제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한다. 냉정, 조소, 무관심을 그려야 세련된 예술인 것처럼, 장엄함을 그리는 것은 매력적인 소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의 긍정적 감정을 그려내는 ‘서정성’을 마냥 ‘신파’라 칭하며 구닥다리 취급하고, 감성을 멀리한 미니멀한 추상미술만을 고상한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여러 번 덧칠해 완성해 갈 수 있는 서양의 유화와 달리 동양화는 단 한 번 그은 먹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생생히 담아내고, 백두산과 금강산 등 명산의 정취를 담아내는 조선화. 어떻게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 김성근의 ‘해금강의 파도’였다.

김성근은 ‘해금강의 파도’라는 책을 쓰며 파도에 대한 연구에 무려 184페이지를 할애했다고 한다. 파도의 원리, 바다 그림에 대한 미학, 조형적 분석…. 집요할 정도인 이런 연구 과정이 있었기에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거센 파도를 동양화 기법으로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김철의 ‘눈 속을 달리는 범’도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한가닥 한가닥 호랑이 털을 그려나가고 색을 입히는데, 흰 부분은 먹이나 색을 칠하지 않고 종이 색을 그대로 남겨둔다. 호랑이 얼굴에 드러난 흰 털, 털 위에 묻은 눈송이까지…. 김철은 호랑이 눈동자 하나를 그리는 데에만도 7시간의 집중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뿐 아니라 흐드러진 서정적인 배경과 호랑이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작가의 능력 또한 일품이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아 실제로 만나본 조선화 작품들은 책에서 볼 때보다 훨씬 생생하고 살아있었다. 빛나는 호랑이의 눈동자와 부드러워 보이는 털도, 삐죽 솟은 금강산의 바위와 너울거리는 구름도, 평생을 기다려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의 마음도 생생히 다가오는 그림들이었다.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담아낸 그림들도 있어 반가웠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그린 집체화에선 치열한 건설 현장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긍지를 담고자 하는 작가들의 마음도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 한켠에선 이 책의 저자인 문범강 교수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더 들여오고 싶은 작품이 많았는데 대북제재 때문에 개인소유의 작품들만 들여올 수 있었다고. 내일이면 전시가 끝나는데 기왕 들여온 그림을 더 많은 사람이 만날 수 있게 서울에서도 전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일부러 광주까지 이 그림들을 보러 오기가 쉽지 않다고.

앞으로 남북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어 북한의 조선화를 만날 기회가 많아지길, 그리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이어가는 독특한 동양화로 발전해온 조선화가 제대로 평가되기를 바란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박영아 객원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