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공동유전개발③] 1970년대부터 석유를 뽑아올린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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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 기름 위에 떠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목소리였다. 북한에 그만큼 석유가 많다는 것이다.

과연 북한에 석유가 있을까?

NK투데이에서는 지난 2014년 "철저한 국가 통제 아래 수출까지 하고 있는 석유"란 제목으로 북한이 석유를 수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이에 토대해 2018년 지금 이 순간 북한의 유전사업과 남북경협에 관련된 분석기사를 내고자 한다.

남북경협의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남북공동유전개발③] 1970년대부터 석유를 뽑아올린 북한
2. 북한에서 석유를 생산·수출하고 있다?

 

북한에 석유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

사실 북한이 이미 석유를 생산·수출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금부터 17년 전인 2001년 5월 25일자 "북한, 석유 생산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1998년 중반 북한이 평안남도 숙천군 앞바다(서한만)에 위치한 유전에서 원유 시험생산에 성공한 뒤 이 유전에서 연간 22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 220만 배럴은 배럴당 70달러로 치면 1억 5400만 달러, 즉, 2000억원 규모의 양이다.

1) 북한의 석유 탐사

그렇다면 북한은 석유를 개발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석유개발의 시작은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던 1950년부터다.

당시 북한은 경흥, 길주, 명천 등 육상지역에 15개의 시추공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시추는 모두 실패하였다.

이후 1968년 숙천지역에서 유징(원유 매장의 징후)을 발견하여 탐사를 시도했다.

이때도 역시 원유를 뽑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해상 석유 탐사로 눈을 돌렸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서한만 탐사였다.

북한은 서한만 탐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탐사기법을 사용했다.

1965~1980년 중국과 합작으로 서한만에 있는 초도 북부 지역에 대한 공중 자력 탐사 작업을 벌였다. (공중자력탐사작업이란 공중에서 암석에 포함된 자기성 광물을 찾거나 자기장의 세기나 방향을 통해 지질조사를 하는 탐사법이다.)

같은 기간 북한 단독으로 중력 탐사도 진행했다. (중력에 의한 가속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 지하 암석의 밀도차에 의한 지구 중력장의 변화를 측정)

또 1976~1980년에는 탄성파 탐사(Seismic Survey)도 진행했다. (지하매질을 전파해온 탄성파의 도달시간을 측정하여 지하매질의 탄성파 속도 분포를 파악하는 탐사법)

그만큼 신중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원유 탐사 작업을 한 것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북한 영해에 속하는 지역을 3개 광구로 나눠 노르웨이·러시아·호주·스웨덴·영국 등 해외 유수의 석유 회사와 공동 탐사를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탐사한 결과로 북한은 1977년부터 시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안주 분지에 2개, 온천 분지에 1개, 서한만 분지에 7개의 시추공을 굴착, 두 유정에서 석유가 나왔고 나머지에서도 석유와 가스 징후가 나타났다.

이미 1970년대부터 북한은 석유를 뽑아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한만 원산 앞바다는 1990년 소련과 탐사를 시작했다.

1992~1996년에 탐사정 2개를 뚫었는데 여기서 석유와 가스 징후를 발견했다.

1997년에는 호주 비치 페트롤리엄(Beach Petroleum)이라는 회사가 이 지역에서 탄성파 탐사를 벌였다.

2012년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 3호의 용도에는 해저 지형 조사를 통한 자원 탐사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광명성 3호를 통해 서해 해저지형을 얻게 된다면 선박 음파탐지로 얻은 해저지형과 비교해 두 자료 간 지형의 차이가 발생하는 영역을 석유매장가능지대로 상정할 수 있다.

2) 북한의 석유 생산과 수출

이후 북한은 석유를 생산했을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2000년 북한대외무역동향’에 따르면 북한이 2000년에 일본, 중국, 태국, 프랑스에 최소 1,000만 달러 (한화 120억원) 이상의 석유를 수출했다고 한다.

수출을 했다는 것은 한국처럼 원유를 수입해 가공 후 수출했거나 자체로 개발해서 수출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십 년간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가 강력하게 시행된 조건에서 석유 수입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해 천만 배럴을 필요로 하는 북한이 1999년 3백만 배럴도 수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자체 생산량이 없다면 수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북한이 태국에 수출된 정제유 내역을 정황으로 해서 북한이 직접 유전 개발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0년 북한이 처음 태국에 수출한 정제유는 749만 달러로 대 태국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 정제유 내역을 보면 역청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청유는 유전에서 막 뽑아 올려 모래와 타르가 뒤섞인 점액질이 강한 기름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북한이 원유를 직접 뽑고 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사실, 북한은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석유 생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1998년 평안남도 숙천 유전에서 생산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다.

북한이 일본에 중유를 수출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것이 평남 숙천 유전에서 생산된 것일 개연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리고 2002년 7월에는 글로벌 오일 서베이 차이나 탐사팀이 평안남도 안주시 숙천군 장동리에서 4대의 장비로 원유를 하루 최대 4백 배럴 생산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또한 서한만의 7개 시추공 중 하나에서는 하루 4백 50배럴씩 원유가 생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렇게 두 지역에서 생산되는 양만 합쳐도 연간 30만 배럴이다.

2000년대 초반 시세가 배럴당 20달러였으므로 대략 6백만 달러(한화 65억원)어치를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6월 1일 조선일보가 인용한 한 전문가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북한이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는 사실은 자체 원유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