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실제 선거 모습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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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편보기 : <북한은 왜?> http://nktoday.kr/?p=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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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1948년 9월 9일에 수립되었다.

그리고 현재 조선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고 있다.

영도라 함은 ‘앞장서서 지도하고 이끎’을 뜻한다. (다음(Daum) 한국어 사전)

그렇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이 세워진 과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어떻게 정당이 국가 전반을 이끌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20. 북한은 선거를 할까? – 북한의 선거, 정치시스템"에서 당의 국가 영도 시스템을 다룰 예정이다.

(계속)

※ 미국 작가 안나 루이스 스트롱은 "북한, 1947년 여름"이라는 글에서 당시 선거의 모습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5"에 실린 글의 일부를 실어 조선 최초로 실시된 직접투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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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북한에는 생생한 정치적 역사가 있었다.

비록 미국의 언론에서는 그 모든 것을 전체주의적인 것이나 러시아의 괴뢰라고 깎아내리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정력적으로 정당과 조직을 만들고 개혁하여 왔으며 여러 선거를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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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1월 3일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모습. 출처 : 인터넷.

2) 최초의 국민투표

1946년 11월 임시정부(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행한 일에 대해 찬반을 묻는 최초의 총선이 있었다.

이때까지 3개의 정당이 있었는데 그것은 단연 제일 큰 북조선노동당, 그리고 천도교청우당, 민주당이었다.

이들 정당들은 민주전선을 형성하여 서방에서 비판받고 있는 ‘단일후보’를 내세웠다.

북한 주민들과 이에 대해 토론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99퍼센트가 투표하였는데, 나와 대화를 했던 모든 사람들은 강요받은 바 없이 투표하고 싶어서 투표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문제를 한 여성광부와 같이 논의해보았다.

"총선에 투표했나요?"

"물론이지요. 후보는 우리 광산 사람이고 아주 훌륭한 노동자이지요. 광산에서 그를 후보로 추대했습니다." 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서구의 선거에 대해 설명하였다.

후보가 한 사람뿐이라면 투표해보아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텐데 선거가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내가 주장하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 후보에게 찬성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그 후보는 큰 창피를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 후보는 최소한 반 이상의 득표를 못하게 될 경우 선거에서 지는 것이 된다.

"물론 제가 없어도 그 후보는 선출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녀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왜냐하면 그는 인기가 대단하고 나의 표 없이도 충분한 표를 얻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그가 더 많은 표를 얻기를 바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찬성한다는 것을 알기에 바래요. 왜냐하면 그는 우리 광산 출신의 훌륭한 노동자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이것은 우리 최초의 선거이고 아무도 지체시킬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후보자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좋아하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한답니다."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정당은 우리 광산과 공장에서 모임을 주최하였고 인민들의 기호를 알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함께 가장 적절한 사람을 추천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미국인들이 왜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모르겠어요."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 도전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그것에 대해(선거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투표방법은 단순했다. ‘반대’용 검은 상자와 ‘찬성’용 흰 상자가 있었다.

투표자는 선거구의 도장이 찍힌 카드를 받아 장막 뒤에 가서 그가 선택한 상자 속에 카드를 넣었다.

카드는 똑같은 것이어서 아무도 그가 어떻게 투표하였는지를 알 수 없었다.

후보자가 배척을 당한 경우는 없었는가?

나는 읍단위 선거에서 후보자가 배척된 것이 13차례나 있었다는 것을 들어 알았다.

서구인들에게는 ‘투표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것으로 보일 이러한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수치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이유는 "지방당들이 인민의 선택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후보자가 선출되었으나 정적이 조직해낸 800표의 반대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투표자의 전적인 신임을 받는 데 실패했으므로 즉각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세 당에서는 모두 그로 하여금 직책을 수락하도록 권유했다.

북한 주민들은 경쟁적 투표방식에도 익숙했다.

1947년 3월의 리나 많은 읍단위 선거에서 이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 선거들은 대체로 비당파적이었는데 후보 추천은 정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락회의에서 이루어졌다.

비밀투표가 시행되었고 경쟁하는 후보들 가운데서 부락의 대표를 선출하였다.

3) 리에서의 투표

리 선거에서도 대단히 흥미있는 방식으로 검은 상자와 흰 상자가 사용되었다.

한 마을에서는 12명의 후보 가운데서 리 인민위원회 위원 5명을 뽑게 되어 있었다.

각 투표자에게 12장의 투표용지가 주어졌는데 그 용지에는 후보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투표자는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용지는 흰 상자 속에 넣었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자 용지는 검은 상자 속에 넣었다.

"용지 전부를 흰 상자 속에 넣는 것을 어떻게 방지합니까?" 라고 내가 물었다.

"방지할 방법은 없죠. 그러나 그런 경우 그 투표자는 자신의 뜻에 반해 투표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던진 표들은 어느 후보도 다른 후보보다 앞서게 하지는 못하니까요.

그는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흰 상자에 넣어도 되고 검은 상자에 넣어도 되며, 원한다면 찬성투표든 반대투표든 하지 않고 용지를 집에 가져가도 됩니다.

만일 그가 어느 한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면 그 한사람에게는 찬성표를 던지고 나머지 후보들에게는 반대표를 던지게 되겠죠.

투표자는 다섯 명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대신 셋 또는 넷, 여섯, 일곱 명에게 찬성표를 던져도 됩니다.

수학법칙에 따라 그는 다섯 이상의 찬성표를 던지면 각각의 표의 효력을 잃게 될테니까요. (위원 5명만 선출하므로)

투표총수가 계산되고 흰 상자의 표와 검은 상자의 표를 점검하면 우리는 마을 주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사람들도 이 방식으로 투표했다.

읽을 줄 아는 이는 12장의 표를 한꺼번에 가져갔다.

그러나 투표자가 12장의 용지가 혼동을 가져온다고 생각되면 한 번에 한 장, 혹은 몇 장만 가지고 가서 상자 속에 넣고 다시 나머지를 갖고 가 투표에 참여했다.

나는 이런 마을 선거에 호기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 선거는 유권자의 선택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북한 주민들은 이 방식을 상당히 원시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정당간의 합의에 따라 세워져서 인민들에 의해 인준되거나 거부되는 단일후보방식이 더 "발전된 방식"이었다.

그들은 단일후보방식에서는 후보들이 대중집회에서 먼저 광범위하게 거론되고 최종적으로 추천되기 전에 모든 정당 지도자들의 심사를 받게 되므로, 이 방식이 최선의 대표를 확보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선거날은 대단한 축제분위기가 되었다.

성직자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투표장으로 갔다.

농부들은 ‘깨끗한 손으로 집행부를 선출하려고’ 진지한 태도로 손을 씻고 깨끗한 삼베옷을 입었다.

아파 누워있는 사람들에게는 투표상자를 보냈으며 병 간호하던 사람들은 ‘투표하는 동안에 등을 돌리고 있도록’ 교육받았다.

어떤 죽어가는 환자는 투표하겠다는 의지로 투표 때까지 버텨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투표함을 가져갔고 그는 마지막 힘을 내 투표하고는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