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정부 수립 후 외국군 철퇴 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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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편보기 : <북한은 왜?> http://nktoday.kr/?p=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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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1948년 9월 9일에 수립되었다.

그리고 현재 조선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고 있다.

영도라 함은 ‘앞장서서 지도하고 이끎’을 뜻한다. (다음(Daum) 한국어 사전)

그렇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이 세워진 과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어떻게 정당이 국가 전반을 이끌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20. 북한은 선거를 할까? – 북한의 선거, 정치시스템"에서 당의 국가 영도 시스템을 다룰 예정이다.

 

국가와 당을 어떻게 건설했을까? ⑧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설과정 

(계속)

⑤ 2차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연석회의 후 결국 이남만의 5.10단독선거가 진행되었다.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 돌베개, 1988년, 129쪽.)

김구, 김규식 등 연석회의 참가자들은 연석회의 결정사항에 따라 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선거 결과 이승만의 독립촉성국민회가 54석, 한국민주당이 39석, 청년단들이 28명, 대한노동연맹이 2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단독선거가 강행된 조건에서 1948년 6월 29일 '조선의 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는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로 지칭되는 제2차 연석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한국독립당 계열을 제외하고 1차 회의 성원 대부분이 그대로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남조선 단독선거와 관련하여 우리 조국에 조성된 정치정세와 장래 투쟁 대책에 관한 결정서'가 논의·채택되었다.

결정서에서 5.10단독선거가 ① 절대 다수의 민중이 불참, 강압적으로 진행(전체 남조선 인구의 1/3 참가, 선거기간 단독선거 반대투쟁으로 살해당한 사람 350명, 검거 투옥된 사람 5,425명)되었다는 점, ② 한국민주당과 이승만 일파가 민중들에게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점, ③ 선출된 국회의원 중 진보적 인사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향후 대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다음의 3가지 행동방향을 담았다.

1. 비법적으로 조직된 남조선 국회와 이것을 토대로 남조선 정부가 수립된다면 우리는 이것을 결정적으로 폭로 배격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조국에 반인민적, 반민주주의적 제도를 설정하며 우리 조국을 두 부분으로 영원히 분열하며 남조선을 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와 군사기지로 변화시킬 목적을 가진 까닭이다.

2. 선거 실시에 기초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를 창설하고 남북조선 대표자들로 조선중앙정부를 수립한다.

3. 조선최고인민회의와 조선중앙정부는 조선으로부터 외국 군대를 즉시, 동시에 철거하도록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난 1차 회의의 결정사항을 계승한 것이었다.

변경된 사항은 '외국군대 철수 후 정부 수립' => '정부 수립 후 외국군대 철수 호소'였다.

미군이 도저히 나갈 조짐이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언제까지나 정부수립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2차 회의에서는 중앙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짓게 된다.

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 단락은 월간조선, "손세일의 비교 평전 (104) 한국 민족주의의 두 유형 – 이승만과 김구 남북공산주의자들의 도전 속에서",2012.12., 김학준, "북한의 역사제2권-미소냉전과 소련군정 아래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048~1117쪽.에서 거의 인용함.)

회의 결정사항에 따르면 조선최고인민회의부터 창설해야 했다.

조선최고인민회의는 각 지역 대표들이 모인 입법기관을 뜻했다.

대표를 뽑기 위해서는 선거가 시행되어야 했다.

이북은 8월 25일에 주민들이 직접 대의원을 뽑기로 했다.

1947년에는 도·시·군 인민위원회 위원들이 모여 북조선인민회의, 북조선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지만 이번에는 주민 전체 투표로 중앙 의회를 꾸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까지 북한에서는 지방에서 인민위원회를 뽑는 선거와 중앙기구 대의원을 뽑는 선거가 따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남에서 대의원선거를 원활하게 실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비밀투표로 각 군 단위의 선거구에서 선거인단 격인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대표를 뽑고 2차로 이 대표들이 대회를 열어 그중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뽑기로 확정했다. (
월간조선, "손세일의 비교 평전 (104) 한국 민족주의의 두 유형 – 이승만과 김구 남북공산주의자들의 도전 속에서", 2012.12.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212100061 에서 아랫부분 인용.)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수는 인구 5만 명에 1명씩으로 했다.

인구 비례에 따르면 이남의 대의원은 360명, 이북의 대의원은 212명이었다.

그렇다면 이북, 이남에서 선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