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안이 왜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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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편보기 : <북한은 왜?> http://nktoday.kr/?p=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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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1948년 9월 9일에 수립되었다.

그리고 현재 조선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고 있다.

영도라 함은 ‘앞장서서 지도하고 이끎’을 뜻한다. (다음(Daum) 한국어 사전)

그렇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이 세워진 과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어떻게 정당이 국가 전반을 이끌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20. 북한은 선거를 할까? – 북한의 선거, 정치시스템"에서 당의 국가 영도 시스템을 다룰 예정이다.

 

국가와 당을 어떻게 건설했을까? 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설과정 

(계속)

7)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1", 돌베개, 1988년, 52, 63, 90쪽.에서 인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의 시작은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였다.

연석회의의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려면 1943년 카이로회담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① 신탁통치를 바랬던 미국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개시하고 3년이 지난 1942년부터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추축국(AXIS)의 패전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942년 6월 미국의 미드웨이 해전 승리, 1943년 2월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 5월 아프리카 방면에서의 승리, 9월 이탈리아의 항복, 교착상태에 빠진 일본의 중국 침략까지, 점점 연합국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1943년 11월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개석은 2차 세계대전 후 대책을 놓고 카이로에서 회담을 진행하게 된다.

이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가 상정되었다.

회의에서는 일본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침략한 모든 국가들을 해방시킬 것을 결의했는데, 조선이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침략 당했지만 "적당한 시기에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했다.

강대국들은 우리 민족의 치열한 독립운동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1943년 루즈벨트,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모인 테헤란 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조선에서의 40년 신탁통치"를 주장하게 된다.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한국현대사1", 49쪽, 풀빛, 1991년.)

신탁통치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구상한 신식민지정책 중 하나로 수십 년간의 신탁통치로 미국이 해당 국가를 종속적인 정치, 경제구조로 만들고 '새로운 식민지종속체제'를 형성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이미 그 성과를 확인한 미국은 신탁통치안을 조선 땅에서도 펼칠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신탁통치안이 철저히 미국 중심의 식민지 체제 재편을 의미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은 같은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이었다.

신탁통치안이 처음 나온 1943년, 영국의 이든 외상은 신탁통치안이 너무나 미국의 이익에 충실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후 미국의 신탁통치안은 미국 · 영국 · 소련의 외무장관이 모인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다시 논의되었다.

미국의 38선 분할 점령 제안으로 시작된 분단은 모스크바 삼상회의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사는 3천만 조선인들의 운명이 남의 나라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 회의에서 미국은 본격적인 신탁통치 체제가 수립될 때까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미‧소 사령관을 우두머리로 하는 단일정부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단지 행정관, 고문관, 조언자의 자격으로만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단일민족정부"를 수립한다는 조항도 없었다.

미국은 자신의 주도 하에 전 조선을 식민지화시킬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소련은 조선 민중의 공통된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임시 조선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긴급함을 밝히고 가능한 한 속히 장구한 일제의 식민통치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를 청산할 것을 요구하는 구절을 협정의 최종안에 삽입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결국 소련의 상식적인 주장에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는 ① 5년 이내 통일정부를 구성할 것, ② 조선의 정당과 사회단체들과 협의 하에 소련과 미국이 후견하는 방책을 추후 논의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계된 가장 중요한 사항을 우리 민족 대표가 아닌 강대국들이 결정하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회담 결정사항에 통일독립국가를 수립하자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미‧소 양군이 한반도를 분할 주둔한 상태에서 분단구조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미국은 이 결정에 참여한 미국 번즈 국무장관을 공산주의와 내통한 불순분자로 내몰고 결정을 무산시키기 위하여 회의내용을 "소련은 신탁통치를 강조하였고 미국은 즉각적인 독립을 옹호하였다"고 정반대로 왜곡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해온 친일지주 정당이었던 한국민주당 역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신탁통치안'으로 몰아가며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과 그 후속조치인 미‧소 공동위원회의 활동을 반대하고 나선다.

우리 민족 내에서 반대 여론이 존재함에 따라 몇 차례 진행되던 미‧소 공동위원회는 통일정부를 논의할 조선 정당‧사회단체 등록 문제에서 파탄나고 말았다.

소련은 모스크바 삼상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정당‧사회단체들을 미‧소 공동위원회 협의체로 등록하는 것을 반대했고 미국은 한국민주당의 등록을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국은 모스크바 삼상협정에 명시된 '일제통치 잔재의 조속한 청산'이라는 원칙에 맞지 않게 친일파들을 옹호하면서 협정의 실현에 '근본적인 장애'를 조성했다.

② 미국의 꿍꿍이속 :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

이렇게 해서 미‧소 공동위원회는 파국을 맞는다.

그러자 미국은 자신들의 영향 하에 있는 유엔을 통해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를 제안했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1) 북한까지 미군정의 영향력이 행사되는 것, 2) 남한만이라도 친미정부를 수립할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의도를 간파한 소련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미·소 양군의 동시 철퇴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군대 철수를 원치 않았다.

이리하여 미국의 "유엔 감시 하의 남북총선거 제안", "유엔을 인정하지 않을 시 남조선만의 단독선거 진행 추진" 입장은 남북 모두의 분노를 야기시키게 된다.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