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축제처럼 진행된 북한의 첫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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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편보기 : <북한은 왜?> http://nktoday.kr/?p=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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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1948년 9월 9일에 수립되었다.

그리고 현재 조선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고 있다.

영도라 함은 ‘앞장서서 지도하고 이끎’을 뜻한다. (다음(Daum) 한국어 사전)

그렇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이 세워진 과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어떻게 정당이 국가 전반을 이끌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20. 북한은 선거를 할까? – 북한의 선거, 정치시스템"에서 당의 국가 영도 시스템을 다룰 예정이다.

 

국가와 당을 어떻게 건설했을까? ③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설과정 

(계속)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20개조 정강에 따라 활동해 나갔다.

우선 제9, 14, 15조를 이행하기 위해 노동법령, 국유화조치,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까지 잇따라 시행했다.

제1, 2, 7조에 따라 친일파도 철저히 숙청했다.

그 외 국영기업이 많은 조건에서 경제안정을 위해 산업 전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해나갔다.

다양한 조치들 중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중요하게 다뤘던 사업 중 하나는 바로 교육사업이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한 후 가장 먼저 논의한 법령도 학생들의 수업을 위한 연필 생산문제였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4/07/021075000200407080517059.html)

그리고 교육기관 수립, 교과서, 학용품 마련까지도 힘을 기울였다.

1946년 8월 새 학기를 앞두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인민학교(초등학교) 7개 과목 25종 교과서 42만 6,500부, 중등학교 13개 과목 28종 교과서 51만 3,300부를 제작·배포했다.

1946년 말에는 57종의 각급 학교 교과서 432만 6,000부를 편찬했으며 학령기 아동들을 위한 잡지 ‘어린 동무’, 학령 전 아동을 위한 잡지 ‘곰’, 선생님들을 위한 참고서도 발행했다. (김학준, "북한의 역사제2권-미소냉전과 소련군정 아래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61쪽.)

전문인재 육성이 절실했던 현황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대학 건설에도 힘을 쏟았다.

1946년 5월 29일 종합대학 창립준비위, 7월 7일 중등학교 선생님 양성을 위한 사범대학 신설, 7월 8일 기술자 양성을 위한 중등기술전문학교 설립을 확정지었다. (김학준, "북한의 역사제2권-미소냉전과 소련군정 아래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56-359쪽.)

그리고 1946년 6월 4일 북조선경리학교 개설해 조세론, 예산론, 금융론, 회계학 등 경리의 이론과 실무를 아는 인재를 육성했다. (김학준, "북한의 역사제2권-미소냉전과 소련군정 아래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69-370쪽.)

1946년 6월 5일에는 법률학을 가르치는 북조선법률학원을 개설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인재를 키워냈다.

그밖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민족문화의 급속한 부흥 발전을 도모하고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용복, '해방 직후 북한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해방전후사의 인식5(구판)", 한길사, 1989년, 221쪽.)

36년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였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4월 29일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공포해 민족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면서 외국 유출을 막는 사업도 함께 추진했다.

5) 도·시·군·면·읍·동·리 인민위원회 선거

사회개혁을 추진해오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20개조 정강 제 4조에 따라 지방자치기구인 도·시·군·면·읍·동·리(각 급) 인민위원회의 총선거 실시를 발표했다.

이는 인민위원회에 대한 주민결속력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인민위원회는 피라미드 식 간접선거로 세워진 자치기구로 동·리에서 주민 선거로 동장·이장이 뽑히고 이들의 투표로 면 인민위원회가 선출되고 군 인민위원회는 면 대표에 의해, 도 인민위원회는 군 대표에 의해 선출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9월 5일 제2차 확대위원회에서 각 급 인민위원회에 대한 주민 총투표를 실시해 지방자치기구에 대한 주민들의 주인의식을 높이고자 했다.

주민들이 동·리, 읍·면, 군·시, 도 대표를 모두 뽑아야 했기 때문에 선거는 나눠서 진행되었다.

1946년 11월 3일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리(동) 인민위원회 선거는 1947년 2월 24~25일, 면 인민위원회 선거는 1947년 3월 5일에 진행되었다. (임영태, "북한50년사①", 들녘, 1999년, 124쪽.)

가장 먼저 실시한 선거였던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는 북한 역사에서 최초로 실시된 근대적 방식의 선거였다.

따라서 이 선거는 이후 북한 선거의 기본질서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전현수, ‘1946년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사학연구 제115호", 2014년 9월, 172쪽.)

그렇다면 선거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까?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채택한 선거규정에는 사람들이 일반적·평등적·직접적 선거권을 가지고 비밀투표로 실시하는 각급 인민위원회 선거라고 되어 있었다. (전현수, ‘1946년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사학연구 제115호", 2014년 9월, 175쪽.)

① 선거위원회 구성

선거를 하기로 결정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우선 중앙선거지도위원회를 꾸리고 각 급마다 선거위원회를 구성했다.

선거위원회는 각 급 선거를 위한 선거구를 인구수에 따라 분할했다.

여러 명의 위원을 뽑아야 했기 때문에 그 수에 맞게 도, 시, 군별로 선거구를 다르게 나눠야 했다.

이렇게 하여 도 인민위원회 선거를 위한 선거구 452개, 시 인민위원회 선거를 위한 선거구 287개, 군 인민위원회를 위한 선거구 2,720개가 구분되었다. 

그리고 12,365개의 분구로 더 쪼개져서 각각 선거위원회가 세워졌다.

이 당시 선거위원회에서 활동한 위원 총수는 80,47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전현수, ‘1946년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사학연구 제115호", 2014년 9월, 179쪽.)

② 선거인 명부 정리 (전현수, ‘1946년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사학연구 제115호", 2014년 9월, 180쪽~195쪽.에서 대부분 인용)

다음으로 선거위원회에서는 선거인 명부 작성 사업이 진행했다.

만 20세 이상의 성인에게 모두 투표권이 주어졌다.

친일파, 재판소의 판결을 받은 범죄자와 판단능력이 결여된 정신질환자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유권자는 총 451만 6,120명이었고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는 4,387명(약 0.09%, 그 중 575명은 친일혐의)였다.

성인 중 99.1%가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수치는 당시 인민위원회 선거가 모든 주민이 참가하는 ‘보통’선거에 근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③ 후보

그렇다면 출마자격은 어떻게 되었을까?

유권자들은 모두 출마자격이 있었다.

그 중 후보들은 기본적으로 정당·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았다.

오늘날 당에서 공천을 받아서 출마하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한국 등에서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선거기탁금 제도는 도입하지 않았다.

후보 추천을 주로 담당했던 기구는 5백만 명의 정당·사회단체 회원들이 소속된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민전)이었다.

북조선 민전은 1946년 7월 22일 공산당, 신민당, 직업총동맹, 여성동맹, 민주청년동맹 등 17개의 정당·사회단체가 망라되어 결정된 조직으로 1948년 2월 1일 518만 여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거대 정당·사회단체 연합기구에서 후보추천을 담당함으로써 후보난립과 대결을 사전에 최대한 조율한 셈이다.

후보 추천사업을 주도했던 각 지역 민전은 노동자, 농민뿐 아니라 지식인, 기업가, 상인들을 대표로 추천하기도 했다.

당시 민전은 총 27개 항의 주요 정치구호(공약)을 제시했다.

공약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20개조 정강 내용뿐 아니라 기업가, 수공업자, 상인들에게 사유 재산이 보호된다는 것, 종교단체 간부들과 신도들에게도 신앙과 종교 의식을 거행할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일반 시민, 노동자, 농민, 사무원, 지식인, 기업가, 수공업자, 상인, 종교단체 간부와 신도, 청년 등을 위한 맞춤형 공약이었다.

후보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민전은 최대한 민의가 반영되도록 했다.

이를테면 리(동) 총회에서 각 후보에 대한 거수로 특정 후보를 후보자명부에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했다.

후보자 가운데서 드러나지 않은 친일경력을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여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에서 도 인민위원 후보자가 459명, 시 인민위원 후보자가 293명, 군 인민위원 후보자가 2,769명까지 총 3,521명의 후보자가 등록되었다.

도 인민위원회는 총 7개 선거구, 시는 6개 선거구, 군은 49개 선거구에서 경선이 치러진 것이다.

④ 선거운동

다음 절차는 선거운동과 선거독려였다.

각 후보별로 따로 선거운동본부를 꾸리지 않고 북조선 민전 차원에서 선거 홍보를 위해 ‘선전원(선거홍보인)’을 일괄적으로 꾸렸다.

선전원들은 각 정당·사회단체에서 파견되었다.

노동당(45,029명)과 여성동맹(2만 1천여 명)이 가장 많은 수를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인 선전원의 수는 총 12만 4,743명이었다.

선전원들은 민전 정책과 후보의 약력 등을 해설하고 선거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이들은 이북지역에서 18,149회의 보고회(50만여 명 유권자 참가), 298,581회의 대담(500만여 명 유권자 참가)을 진행했다.

통계에 따르면 거의 모든 유권자들이 대담과 보고회에 참여한 셈이다.

⑤ 투표

선거 모습.

이렇게 하여 11월 3일 북한 최초로 직접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는 축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안문석, "북한현대사산책1", 인물과사상사, 2016년, 273쪽.)

유권자들이 선거를 처음 참가하면서의 설렘과 정권을 스스로 뽑는다는 자부심에 넘쳐있었던 것이다.

투표 개시(새벽 6시) 2시간 전부터 대중들이 물밀 듯이 선거구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투표는 흑백투표함을 투표행위가 보이지 않도록 병풍으로 가리고 찬반 의사를 밝히는 시스템이었다.

유권자가 백색함에 넣으면 후보자를 찬성한다는 의미였고 흑색함에 넣으면 후보자를 반대한다는 의사 표현이 되는 것이었다.

이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배려한 투표방식이면서 동시에 무효표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선거는 낮 12시 이전에 거의 완료되었다. (안문석, "북한현대사산책1", 인물과사상사, 2016년, 273쪽.)

이는 선거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는 방증이다.

선거 전, 김일성 북조선임시인민위원장이 ‘인민들 자신이 선거하는 정권은 진실한 정권이 될 수 없으며 인민이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선거가 시기상조니 이를 연기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결국 이런 일부의 주장이 실정에 맞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선거 장면을 묘사한 소련 자료에 따르면 노인들은 명절 옷을 입고 거리에서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전례 없는 즐거움으로 환호하며 서로에게 말을 걸기도 했으며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주민들은 무리를 지어 거리를 몰려다니며 춤과 노래, 민속놀이, 그네타기 등 오락을 즐겼다고 한다.

투표율은 99.6%였다.

유권자(451만 6.120명) 중 450만 1,813명이 참여한 것이었다.

이렇게 선출된 도·시·군 인민위원 당선자의 정당별, 성별, 직업별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