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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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편보기 : <북한은 왜?> http://nktoday.kr/?p=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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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의 공식 국가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1948년 9월 9일에 수립되었다.

그리고 현재 조선노동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하고 있다.

영도라 함은 ‘앞장서서 지도하고 이끎’을 뜻한다. (다음(Daum) 한국어 사전)

그렇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이 세워진 과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어떻게 정당이 국가 전반을 이끌게 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20. 북한은 선거를 할까? – 북한의 선거, 정치시스템"에서 당의 국가 영도 시스템을 다룰 예정이다.

(계속)

국가와 당을 어떻게 건설했을까? ②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설과정 

 

38선 이북에서는 8월 27일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8월 31일 평안북도 임시인민위원회, 9월 1일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9월 2일 황해도 인민위원회, 9월 15일 강원도 인민위원회, 10월 26일 함경북도 인민위원회가 각각 건설되었다. (임영태, "북한50년사①", 들녘, 1999년, 26쪽.)

이렇게 하여 11월 말에는 564개 면, 28개 읍, 70개 군, 9개 시, 7개 도에 인민위원회가 세워진다. (1945년 11월 20일 열린 전국 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서 발표한 통계. 찰스 암스트롱 지음, 김연철·이정우 옮김, "북조선탄생", 서해문집, 2006년, 91쪽.에서 인용.)

분단된 경기도를 제외하고 38선 이북 모든 면·읍·군·시·도에서 인민위원회가 건설된 것이다. (김용복, '해방 직후 북한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해방전후사의 인식5(구판)", 한길사, 1989년, 201쪽.)

대부분의 인민위원회는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주민대표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방인민위원회는 주민대회 또는 주민대표자들의 회의에서 거수 또는 비밀투표에 의해 위원을 선출하는 방법으로 건설되었다.

1930년대 초 이후 일제와 싸우다가 감옥에서 평균 5년 이상씩을 복역한 ‘투사’들은 8월 15일 석방된 후 인민위원회의 요직을 맡았다. (브루스 커밍스, 김주환 옮김, "한국전쟁의 기원" 하, 청사, 1986, 266~267쪽. / 박세길, "다시쓰는한국현대사1", 돌배게, 2015년 신판, 103쪽에서 재인용.)

황해도 인민위원장을 맡은 김덕영은 여러 번 독립운동으로 복역한 인물이었다.

홍원 인민위원장이었으며 나중에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산업부장을 지낸 이봉수는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차례에 걸쳐 투옥된’ 전력의 소유자였다.

함경남도 인민위원회는 독립운동가가 경찰서장 자리를 맡고 있었다. (전국 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 발표 내용 중. 찰스 암스트롱 지음, 김연철?이정우 옮김, "북조선탄생", 서해문집, 2006년, 91~92쪽.)

독립운동가들이 주도한 인민위원회는 초기부터 조선인들의 요구에 밀착해 활동해나갔다. (박세길, "다시쓰는한국현대사1", 돌배게, 2015년 신판, 104쪽.)

그들은 철수한 일본인들의 재산·기업·농지를 관리하고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했다. (김성보, "북한의 역사1", 역사비평사, 2011년, 29쪽.)

일례로 평북임시인민위원회는 9월 2일 친일파들을 체포하고 수풍발전소를 접수했다. (김용복, '해방 직후 북한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해방전후사의 인식5(구판)", 한길사, 1989년, 212쪽.)

황해도 겸이포인민정치위원회는 제철소를 인수하고 일본으로부터 공장을 넘겨받았다. (김용복, '해방 직후 북한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해방전후사의 인식5(구판)", 한길사, 1989년, 214쪽.)

인민위원회는 식량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국적으로 지주와 소작농이 수확물을 3대 7로 나누도록 하는 소작료 3·7제를 실시해 농민의 부담을 줄였다.

평남인민정치위원회의 경우 10월 24일 ‘식량관리령’을 선포하고 12월 16일 ‘접수 일본인 토지 관리규칙’을 발표해 식량 및 토지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김용복, '해방 직후 북한 인민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해방전후사의 인식5(구판)", 한길사, 1989년, 211쪽.)

소련군 사령부는 조선 민중들의 자치활동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 38선 이북 전체 행정을 담당해줄 임시중앙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소련군의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각지에 들어선 인민위원회 대표들의 선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

이런 입장에서 10월 8~10일 평양에서 열린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 참가했다. (김성보, "북한의 역사1", 역사비평사, 2011년, 31~33쪽.)

그러나 조만식을 비롯한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회의에서 북한에 독자적인 행정기구를 만드는 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남북중앙정부를 빨리 수립해서 외국 군대의 철수문제부터 제기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미국이 이미 인민공화국과 인민위원회를 해체하고 있는 남쪽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논쟁 끝에 1945년 11월 19일 5도(함경남북도, 황해도, 평안남북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각 도 인민위원회의 연락기관으로서 ‘북조선 행정 10국’을 임시로 출범시켰다. (김주환, '해방 후 북한의 인민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 "해방전후사의 인식5(구판)", 한길사, 1989년, 260-261쪽.)

각 도 대표들이 모여 임시로 꾸린 북조선 행정 10국은 겨우 정부의 토대만 갖추었을 뿐 주로 도 인민위원회 연락, 소통, 후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원활한 건국사업을 위해 이북의 인민위원회를 비롯한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은 보다 강력한 임시중앙정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4)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1946년 2월 주요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은 ‘중앙주권기관을 세우기 위한 발기위원회’를 꾸린다. (김성보, "북한의 역사1", 역사비평사, 2011년, 70쪽.)

이들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기 위한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의 예비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도·시·군 인민위원회 위원장, 행정국 국장들을 비롯해 노동조합, 농민조합, 여성동맹, 종교단체, 공산당, 민주당, 독립동맹(위원장 : 김두봉) 등의 대표들이 모여 1946년 2월 7일 예비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2월 8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한 ‘북부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시·도·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한 것이다.

당시 대표단은 정당대표 6명, 사회단체 대표 8명, 행정국장 11명, 각급 인민위원회 관련자까지 총 137명이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 선거를 진행했다.

그리고 투표를 통해 김일성 위원장부터 김두봉 부위원장, 강양욱 서기장까지 총 23명의 인민위원을 선출했다.

이렇게 해서 출범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38선 이북의 임시중앙자치단체의 성격을 가졌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의 인민·사회단체·국가기관이 실행할 임시법령을 제정·선포할 권한"를 가졌으며 "각 국과 각 도 인민위원회 등의 옳지 못한 결정을 시정하며, 또한 정지"할 수 있었다.

상당히 그 권한이 높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전 북조선 행정 10국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관할로 들어왔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출범한지 1달도 안 되서 3월 5일 토지개혁 법령을 발표했다.

3월 23일에는 향후 활동방향을 담은 ‘20개조 정강’을 제시했다.

※ 참고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nh/view.do?levelId=nh_052_0050_0020_0030_0020)

20개조 정강

1. 조선의 정치·경제생활에서 과거 일본통치의 일절 잔여를 철저히 숙청할 것.

2. 국내에 있는 반동분자와 반민주주의적 분자들과의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하며 팟쇼 및 반민주주의적 정당·단체·개인들의 활동을 절대 금지할 것.

3. 전체 인민에게 언론·출판·집회 및 신앙의 자유를 보장시킬 것. 민주주의적 정당·노동조합·농민조합 및 기타 제 민주주의적 사회단체가 자유롭게 활동할 조건을 보장할 것.

4. 전 조선 인민은 일반적으로 직접 또는 평등적으로 무기명투표에 의한 선거로써 지방의 일체 행정기관인 인민위원회를 결성할 의무와 권리를 가질 것.

5. 전체 공민들에게 성별·신앙 및 자산의 다소를 불구하고 정치·경제·생활 제조건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

6. 인격·주택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며 공민들의 재산과 개인의 소유물을 법적으로 보장할 것.

7. 일본통치시에 사용하며 그의 영향을 가진 일체 법률과 재판기관을 폐지하며 인민재판기관을 민주주의 원칙에서 건설할 것이며 일반 공민에게 법률상 동등권을 보장할 것.

8. 인민의 복리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공업·농업·운수업 및 상업을 발전시킬 것.

9. 대기업소·우수기관·은행·광산·삼림을 국유로 할 것.

10. 개인의 수공업과 상업의 자유를 허락하며 장려할 것.

11. 일본인·일본국가 매국노 및 계속적으로 소작을 주는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할 것이며 소작제를 철폐하고 몰수한 일체 토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여 그들의 소유로 만들 것. 관개업에 속한 일체 건물을 무상으로 몰수하여 국가에서 관리할 것.

12. 생활필수품에 대한 시장가격을 제정하여 투기업자 및 고리대금업자들과 투쟁할 것.

13. 단일하고도 공정한 조세제를 규정하며 진보적 소득세제를 실시할 것.

14. 노동자와 사무원은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며 최저임금을 규정할 것. 13세 이하의 소년의 노동을 금지하며 13세로부터 16세까지의 소년들에게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할 것.

15. 노동자와 사무원들의 생명보험을 실시하며 노동자와 기업소의 보험제를 실시할 것.

16. 전반적 인민의무교육제를 실시하며 광범하게 국가경영인 소·중·전문대학교를 확장할 것. 국가의 민주주의적 제도에 의한 인민교육제도를 개혁할 것.

17. 민족문화·과학 및 기술을 전적으로 발전시키며 극장·도서관·라디오·방송국 및 영화관 수효를 확대시킬 것.

18. 국가기관과 인민경제의 제부문에서 요구되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특별학교를 광범히 설치할 것.

19. 과학과 예술에 종사하는 인사들의 사업을 장려하며 그들에게 보조를 줄 것.

20. 국가 병원수를 확대하며 전염병을 근절하며 빈민들을 무료로 치료할 것.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