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북한에서 성매매를 없앴다고?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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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투데이에서는 <북한은 왜?>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대사,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살펴보는 장기 기획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편보기 : <북한은 왜?> http://nktoday.kr/?p=15265

북한에서 성매매를 없앴다고? ⑤ 

–  1946년 남녀평등권 제정과 그 의미 –

 

4) 성매매가 일소된 이북 사회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1946년 7월부터 38선 이북지역에서 성매매는 '금지'된다.

그렇다면 법령이 제대로 집행되었을까?

1946년 7월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징역 5년)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 업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로 눈을 돌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일자리가 없으면 직업 전환이 어렵다.

그러나 이북지역 '건국사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과거 성매매업에 종사했던 여성들이 노동할 현장은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기영의 소설 "땅"에는 과거 첩이었던 여성이 토지를 분배받아 독립하여 농사짓고 살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소설로 미루어봤을 때 첩에게도 과거를 청산할 수 있도록 물적 토대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이 노동현장으로만 갔을까?

한 일화에 따르면 북에 공·사창제도가 금지되자 평양 기생 수십 명이 김일성 북조선임시인민위원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공, 사창 문을 닫게 되면서 당장 기생들의 생계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기생들을 만난 김일성 위원장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음악당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무용단에 가서 춤을 추고 또 가정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은 가정생활을 하면 된다. 이와 같이 다 잘 살 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양에서 유명했던 기생들은 해방 후 기방에서 벗어나 전문 음악가, 가수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메밀꽃 필 무렵' 작가 이효석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 평양 기생 왕수복이 있다.

왕수복

해방 후 기방생활을 청산한 왕수복은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가수로 발탁된다.

기량과 재능을 인정받은 왕수복은 훗날 북한 국립교향악단 성악 가수가 되었고 공훈가수 칭호를 받아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기생이 애국자, 국가를 대표하는 가수로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많은 사람들에게 고향 향수를 느끼게 한 '조선팔경가'가 있다.

그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선우일선도 평양기생이었다.

선우일선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 3년제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해 기생이 되었던 선우일선은 해방 후 기방생활을 청산했고 평양음악대학 성악학부 민족성악교원로 발탁되어 평생 음악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말년까지 민요 연구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성매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청산되었는지는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경남대 북한전문대학원 김귀옥 객원교수는 '민족21' 2001년 7월호에서 '1946년 법령이 공·사창의 제도적 근절을 이루기는 했으나, 음성적으로 존재했던 성매매 문제는 실제로 없애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해방 직후 북한이 '공·사창 제도 자체를 일소'했다는 점 자체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면서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계속)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