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햇볕정책으로 나타난 김정은 위원장의 '핵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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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판 햇볕정책

햇볕정책은 강풍이 벗기지 못한 옷을 따뜻한 햇볕이 벗겼다는 이솝 우화에서 따온 말로 김대중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을 이룬다.

북한은 외부에서 자신을 개방시킨다는 의미의 햇볕정책을 싫어했고 그래서 김대중 정부 시기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대북포용정책으로 바꿨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햇볕정책이란 표현을 다시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모습을 보면 북한이 햇볕정책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올해 신년사를 시작으로 북한은 전례 없이 과감한 화해정책을 펴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평창동계올림픽에 사상 최대 규모의 선수단, 대표단, 예술단을 보내 여론을 들었다 놨다.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내려와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제안해 정세를 뒤흔들었다.

가장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가 방북했을 때 파격적인 환대를 하면서 핵·미사일 동결, 한반도 비핵화 동의 등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했고 심지어 미처 제기하기도 전에 한미연합군사훈련 실시를 이해한다고 언급한 일이다.

대북특사단을 위한 만찬 모습. [출처: 인터넷]

또 미국에 대해서도 대북제재 철회 등의 조건을 달지 않고 과감하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

악화된 북중관계 속에서 한반도 정세변화에 고립돼 '차이나 패싱'이란 말까지 돌던 중국을 위해 먼저 중국 방문을 제안해 북중 정상회담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지속하던 한국,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이에 동조하던 중국의 기회주의를 뜨거운 햇볕으로 녹이고 있는 셈이다.

햇볕정책의 원동력은 핵

북한이 올 들어 이처럼 강력한 햇볕정책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은 지난해 11월 29일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해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 직후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만난 러시아 하원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면서 협상에 나가는 조건은 핵보유국 인정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한 후 이를 바탕으로 전면적인 협상에 나선 것이다.

핵무력 완성이 북한의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이유는 핵무기 자체가 군사력의 질적 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인명 살상이나 무기 파괴, 군 시설물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재래식 무기와 달리 지역 전체를 장기간 초토화하여 전쟁의 양상 자체를 바꾸는 전략무기다.

또한 핵무기를 가진 나라끼리는 공멸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전쟁을 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은 이미 2005년에 핵보유 선언을 했고 2006년 첫 핵실험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수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다양한 폭발력의 핵무기를 개발했고 인류가 개발한 무기 가운데 가장 강한 폭발력을 갖는 수소폭탄까지 개발했다.

나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미국 본토를 직접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 본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화성-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하며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미국 본토 전역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기에 미국이 함부로 북한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아가 이제부터는 북한이 미국을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그간의 입장이 뒤바뀐 상황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북한이 드러낸 자신감의 배경이 된다.

삼지연관현악단으로 국내 여론을 달구고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이끌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치를 '음악정치'라고 한다면 핵을 대외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 북한의 행보를 김정은 위원장의 '핵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할 핵무기 체계를 완성했지만 이를 위협 수단이 아닌 평화공세, 햇볕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모습, 이를 김정은 위원장의 '핵정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두고 통일뉴스는 3월 10일자 데스크브리핑에서 '평화의 핵폭탄'을 쏘았다고 평했다.

비핵화를 주장하는 핵보유국

한편 북한은 일반 핵보유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반 핵보유국 가운데는 미국처럼 자신이 가진 핵무기를 적극 활용하며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는 나라도 있고,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 대치중인 국가를 향해 핵보유를 시위하며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도 있으며, 영국, 프랑스처럼 심각하게 대치중인 나라가 없어 굳이 핵보유를 시위하지는 않지만 유사시에 대비해 꾸준히 핵무기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나라든 핵보유국이라면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핵폐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핵보유국들은 핵무기가 위험하기 때문에 확산되면 안 된다며 핵확산금지조약까지 만들었지만 정작 자기가 가진 핵무기는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핵보유가 국제 사회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선사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 나라는 없는 것이다.

핵 과점체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물론 미국과 소련(지금은 러시아) 사이에 핵감축협정이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핵무기를 폐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실전 배치된 핵무기를 창고로 옮겨놓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북한은 다른 핵보유국과 달리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자신은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맞서 핵개발을 했으나 원래 비핵화가 '유훈'이므로 궁극적으로는 핵을 폐기할 것이며 이를 위해 전 세계 비핵화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비핵화는 비핵보유국의 주장이거나 민간 차원의 주장이었다.

핵보유국들이 비핵화 주장에 꿈쩍도 안 한 이유다.

그런데 핵보유국이 비핵화 주장을 하는 새로운 상황이 등장했다.

이는 세계 비핵화 운동의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비핵화를 주장하는 핵보유국,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핵정치'가 가진 두 번째 특징이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