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마시대 특집] 군사분야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만리마시대 특집] 군사분야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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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마 특집 기사 소개 :  http://nktoday.kr/?p=15074

지난 2년동안 북한의 미사일발사, 핵(수소탄)실험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작년(2016년) 한 해 동안 북한은 2차례의 핵실험, 24차례의 미사일시험발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올해(2017년) 1월 7일 앤토니 블링큰(Antony J. Blinken)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2016년 한 해 동안 핵무력을 "질적으로 향상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9월까지 2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총 16차례의 미사일 발사가 있었다.

북한이 연이어 무기 실험을 단행하는 것은 그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북한은 군사무기의 개발 및 증강 역시 만리마시대의 성과로 꼽는다.

그렇다면 만리마시대에 군사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만리마 시대 전후 핵실험 양상과 특징

2005년 2월 북한은 공식적으로 핵보유선언을 했다.

이후 북한은 2006년 10월, 2009년 5월, 2013년 3월, 2016년 1월(수소탄실험)까지 3년여에 한 번꼴로 핵실험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내세운 '3년주기설'은 2016년부터 깨졌다.

북한이 2016년 1월 5일 수소탄실험 이후 8개월만인 2016년 9월 9일 탄도미사일용 핵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인 올해(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

이에 한국 기상청은 이번 6차 핵실험 규모를 추정하면서 기존의 5차 핵실험에 비해 5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 50~70킬로톤(kt)급이라고 발표했다.

4차 핵실험이 6kt 규모라는 한국정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불과 1년 반 만에 그 성능이 10배 늘어난 셈이다.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이라는 북한의 주장까지 사실이라면 수소탄공식실험(2016.01.01.) 이후 1년 9개월 만에 수소탄 소형화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6차핵실험 당일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폭탄 위력을 수십킬로톤(kt)에서 수백킬로톤(kt)까지 조절할 수 있다면서 기상청의 예상수치보다 훨씬 위력적인 폭발이 가능하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결국 북한은  만리마시대 3~4년동안 수소탄을 개발하고 그 소형화까지 이뤄내면서 또 하나의 '만리마속도'를 창조한 셈이다.

2. 만리마 시대 전후 미사일 개발과 시험발사 양상과 특징

1) 1993년~2012년

1993년 전 세계는 북한이 사정거리 1000km 이상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했다.

북미대치상황 중인 1993년 5월 29일 북한이 최초로 장거리 미사일 노동1호(화성-7형)을 발사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20여년동안 미사일 개발에서 많은 진전을 이뤄왔다.

1993년 미사일 발사 이후 5년여(1998년 8월 31일)만에 북한은 놀라운 소식을 발표한다.

90년대 말 '경제고립' 속에서도 북한이 '자체의 힘과 기술로' 인공위성(광명성 1호)을 발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위성은 군사부문과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인공위성을 지구 대기권 밖으로 발사함으로써 북한이 사실상 장거리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고있음을 보여줬다.

2000년대가 들어선 후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발사는 꾸준히 이어졌다.

2003년, 2005년, 2006년(장거리미사일), 2007년, 2008년에 북한은 집중적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해왔다.

이 시기는 2002-2003년 2차 북핵위기,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즈음과 맞물린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1998년 미국의 금창리 핵시설 의혹 제기 당시 북한이 발사체를 쏘아올린 것처럼 북미대치상황에 미사일 발사 전략을 주로 활용해온 것이다.

200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북한의 행동 양상이 달라진다.

북미대치상황이 고착되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멈춘 것이다. 

대신 2009년 북한은 두 번째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 2호를 운반로켓 은하 2호에 탑재해 발사했고 3년 후 2012년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을 맞이한 북한은 광명성 3-2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에 미국은 2012년 발사한 북한의 인공위성을 장거리미사일로 규정해 2013년 1월부터 유엔대북제재를 추진했다.

북한은 ‘평화적 우주개발 권리’를 주장하며 반발해나섰고 2016년부터 다시 연이은 미사일발사실험이 이어졌다.

2) 2016년~2017년

2016년 북한은 1월 4차 핵(수소탄)실험을 진행하고 2월 7일 인공위성 광명성4호 발사한다.

이후 북한은 매달 1-2회씩 미사일 발사실험을 진행했다.

2016년 한해동안 북한은 무려 총 6차례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7차례의 준중거리 미사일 발사, 10차례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 SLBM의 개발, 2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의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실험에 맞먹는 규모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한이 SLBM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다.

SLBM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을 뜻하는 것으로 이 기술은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국가들이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2017년)는 어땠을까?

올해 2월과 5월 중거리미사일 북극성-2형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3월 6일, 22일, 4월 5일, 16일, 29일, 5월 14일, 21일, 27일, 29일, 6월 8일 각각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과 29일 ICBM까지 발사하고 8월 26일, 29일, 9월 15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2017년 역시 2016년의 발사규모와 못지않았던 것이다.

한편 북한은 8월 29일 일본 상공을 가로지른 미사일에 대해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국권을 강탈했음을 공포한 날인 경술국치일에 맞춰 발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3. 2016~2017년 북한 군사행보에 대한 해외 반응

북한은 최근 몇 년간 군사부문에서 핵탄두 소형화, 수소폭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탄도로켓 대기권 돌입 성공에 의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이런 군사부문의 성과 역시 북한은 만리마시대 중요한 성과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북한의 군사행보에 대한 해외 반응은 어떠할까?

2017년 9월 21일 허핑턴포스트는 1년 반 동안의 북한의 행보로 한반도 '핵의 균형'이 기울었다는 평가를 했다.

최근 북한의 빠른 핵·미사일 개발 속도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면서 "미사일 한 발을 시험발사 하는 것도 힘든 나라라고 생각했던 북한이 올해(2017년) 들어서 9월 현재까지 북한은 12차례의 성공적인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는데 이 정도로 가면 지난해 14차례의 성공적인 발사를 앞질러 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시험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생산능력이 있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성과는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허핑턴포스트는 세계 다양한 전문가들의 분석글도 인용하여 소개했는데 북한의 개발속도가 매우 빠른 점을 주목했다.

비핀 나랑 교수, 몬트리올 국제문제 연구소 조슈아 폴락 연구원 등은 북한의 핵개발속도가 꽤 인상적이라면서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심지어 프랑스의 개발 속도보다 빠르게 진전"한 것으로 분석했다고 소개했다.

4. 북한 핵·미사일 기술 발전의 비결은?

그렇다면 2016년부터 북한의 군사행보가 달라진 이유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우선 2013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하 병진노선)을 발표한 이후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했던 것이 2016년부터 성과가 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2017년 4월 발표한 비망록에서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면서 병진노선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2013년부터 북한은 전체 국방예산을 핵과 발사체 개발에 집중해왔고 그 힘으로 SLBM, 소형화된 핵탄두, 고출력고체로켓엔진, 지대지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0', '북극성-2'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북한과 미국간의 긴장 고조에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2013년 병진노선은 2012년 쏘아올린 인공위성 추정 발사체에 대해 2013년 1월 미국이 유엔을 발동하여 제재를 가하면서 시작되었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에 유엔제재가 이루어졌다면서 어느 나라나 갖고 있는 우주 개발 권리에 유독 북한만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했으며 이후 북미대치상황이 계속되었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2009년 각각 한 차례씩 대북제재안을 채택했던 것에 비해 유례없이 2013년 2차례(제2087호, 2094호), 2016년 2차례(제2270호, 2321호), 2017년 3차례(제2356호, 제2371호, 제2375호) 대북제재안을 채택함으로써 북한을 강도높이 압박했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강력한 압박에 북한의 맞대응이 이어졌고, 결국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나아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한 내 과학기술자들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첨단무기 자체가 개발될 수 없다.

2014년 1월 5일 국가과학원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위원장은 "과학자, 기술자들의 정신력을 최대로 발양시키는 것과 함께 그들의 생활문제를 원만히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만리마시대라고 일컫는 지난 몇 년간 과학기술자들에게 집중투자를 해왔다.

만리마시대의 '자랑찬 창조물'로 꼽는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은 모두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주상복합단지였다.

이외에도 김책공대아파트, 연풍과학자휴양소, 위성과학자거리 등 새롭게 지은 건축물 중 상당수는 모두 과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2012-15년 과학기술 예산을 연평균 6.55%(같은 기간 국가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5.2%) 증액하는 등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확대했다.

과학자들의 정신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노력들도 병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차원의 전격적인 집중 투자는 결국 과학기술자들의 연구수준을 높였을 것이다.

북한은 만리마시대를 제시한 제7차 당 대회 전, 과학기술자들이 소형핵탄두를 개발하고 탄도로켓 대기권 돌입 환경모의실험을 진행했다고 주장하면서 만리마시대의 큰 성과로 지적했다.

6차 핵실험(수소폭탄) 직후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핵과학자들을 "영웅중의 영웅"이라고 칭하면서 "핵 전투원들의 투쟁 정신, 투쟁 기풍을 모든 부문·단위에서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과학자들 속에서 만리마시대의 또 하나의 '투쟁정신'이 창조된 셈이다.

해외여론도 이제 북한의 과학자들에게 주목을 돌리기 시작했다.

허핑턴포스트는 9월 21일자 기사에서 북한 핵과학자들이 핵무기 제조 개발을 위해 24시간 일하고 있다면서 핵과학자들이 과학연구에 힘쓰는 이유를 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보상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 핵과학자들이 전 세계에 걸쳐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지만 실제 북한에서는 영웅으로 대우받으며 군중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 북한 미사일 일지 참고자료 

 KBS [뉴스플러스] 북한의 최근 미사일발사일지

KDI, 동향과 분석, 2009년 3월호.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