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사랑한 음악가, 제35차 윤이상 음악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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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사랑했던 세계 음악계의 거장 윤이상.

그를 기리는 제35차 윤이상음악회가 9월 27일 평양시 중구역 영광거리에 위치한 윤이상 음악당에서 열렸다.

북한에서는 1982년부터 윤이상 음악제를 개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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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은 관현악 '아리랑'을 시작으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3중주', 초기가곡 '고풍의상', 실내교향곡 2번과 여성독창 '물레타령', 여성3중창 '통일아리랑' 등의 곡들을 섬세한 연주와 풍부한 성량으로 훌륭히 표현해 관객들의 절찬을 받았다.

공연에는 북한 박춘남 문화상, 홍경호 윤이상음악연구소 소장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윤이상은 서양악기로 동양음악을 만들었던 세계적 현대음악가다.

윤이상은 서양음악의 화음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동양적 기법을 적용하기 위해 한음을 중심적으로 그 음을 변형시키는 '주요음' 기법을 사용했다.

윤이상은 생존 시 현대음악의 세계 5대 거장으로 꼽히며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윤이상은 "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음악가였다.

그 시작은 윤이상이 1956년 독일 동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다가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였다.

스트라빈스키, 카라얀 등 음악계 거장 161명이 그의 석방을 청원했다.

압력을 느낀 박정희 정부는 1969년 대통령 특사로 그를 석방했지만 서독으로 추방하고 입국 금지시켜버렸다.

그 이후에도 윤이상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는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으며, 범민련해외본부의장을 역임하며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윤이상은 1987년 음악을 통한 남북교류를 성사시키고자 남북합동음악회를 추진하고 1990년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끝내 그의 입국을 거부했고 윤이상은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독일에서 눈을 감는다.

북한은 윤이상의 음악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기리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92년 윤이상음악당을 완공했다.

윤이상음악당은 15층으로 300석 규모의 연주홀을 비롯해 연습실, 휴게실은 물론 국제회의실, 강의실, 녹음실, 자료문헌실 등 음악활동에 필요한 2백여 개의 방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윤이상음악회와 윤이상 음악연구회가 개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윤이상을 연구하기 위해 평양에 윤이상음악연구소를 설립했으며, 그 소속의 윤이상 관현악단도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2002년부터 그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매년 윤이상음악제가 열린다.

이 음악제는 매년 봄과 가을에 통영국제음악제와 TIMF아카데미,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형식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외에도 윤이상 박물관, 윤이상 생가터, 윤이상 음악마을 등 윤이상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준성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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