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군절 제정을 통해 본 북한의 억제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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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24일 정령 제1177호를 통해 '전략군절'을 제정했다.

정령은 인민군 전략군이 북한의 '핵무장력'이라고 소개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9년 7월 3일 독자적 군종인 '전략로케트군'을 창설해 "자위적 핵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한 것을 기념해 7월 3일을 전략군절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전략로케트군이 처음 공개된 건 2012년 3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략로케트군 사령부 현지지도 때였다.

그래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2012년 즈음 전략로케트군이 창설된 것으로 분석해왔다.

그리고 전략로케트군 이전에 미사일을 운용하던 부대인 미사일지도국은 2003년 창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국방백서 참조)

그런데 이번에 북한 발표를 통해 한참 이전인 1999년 이미 전략로케트군이 창설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북한의 전략군과 비슷한 중국의 제2포병이 18년 동안 창설 사실을 대외비로 한 사례로 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전환한 시기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이 2014년 3월 5일 전략군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전환 시기가 그 이전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전략로케트군 창설 배경은?

원래 북한 인민군에는 미사일지도국이 있었는데 미사일 종류와 개수가 늘어나면서 운용 부대도 증가해 육·해·공군과 다른 독립 군종으로 전략로케트군을 창설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군종을 창설하는 이유는 새로운 무기나 부대의 등장으로 군사전략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 미국은 탄도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우주로켓 '백두산 1호'에 실어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인공위성이든 미사일이든 분리된 추진체가 낙하한 지점이 발사지점에서 1646km(추정) 떨어진 곳이므로 최소 중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전장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태평양으로 확대되고 주일미군이나 괌기지 미군의 증원이 까다롭게 된다.

또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충분히 비축하면 후방의 주요 전략 거점을 직접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작전을 훨씬 다양하게 펼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군사전략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해진다.

이듬해인 1999년에 전략로케트군을 창설한 배경이 여기 있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일명 노동미사일. 사거리 1300km로 추정되는 준중거리 미사일이며 1993년 첫 시험발사가 확인됐다. ⓒ신은미

일명 노동미사일. 사거리 1300km로 추정되는 준중거리 미사일이며 1993년 첫 시험발사가 확인됐다. ⓒ신은미

구 소련도 첫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지 2년이 지난 1959년 전략로켓군을 창설했다.

중국의 경우 중거리탄도미사일을 개발한 1966년 제2포병을 창설했다.

전략군 전환의 배경은?

그렇다면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환이 이루어진 시점이 2012~2014년이므로 이 기간에 북한의 무기개발이나 군사전략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10월 12일자 연합뉴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2013년 말 전략로케트군을 전략군으로 전환했으며 그 의미는 미사일 발사체계를 자동화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즉,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사 명령에 따라 곧바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체계로 개편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보도가 사실이라면 전략군으로 전환한 뒤인 2014년 북한이 각종 구·신형 미사일과 다연장로켓(방사포) 발사시험을 유례없이 많이 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신형대구경로켓포(방사포) 발사장면. ⓒ신화망

신형대구경로켓포(방사포) 발사장면. ⓒ신화망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사 명령에 대한 반응 속도를 높이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제2포병이나 러시아의 전략로켓군도 합참을 거치지 않고 최고사령부의 직접 지휘를 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군종 명칭을 바꾸었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거부적 억제전략에서 최소억제전략으로

이 시기 북한의 무기 체계에서 주목할 부분은 핵탄두 개발과 신형 미사일 개발이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후 북한은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를 강조했는데 이는 미사일에 실을 수 있는 핵탄두 개발을 의미한다.

그리고 올 들어 수소폭탄 실험에 이어 미사일에 장착할 핵탄두를 공개했다.

올해 공개했다면 이미 그 전에 개발을 마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2015년 10월 당창건기념일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ICBM. ⓒ신은미

2015년 10월 당창건기념일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ICBM. ⓒ신은미

그리고 2015년 4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도 공개했다.

즉, 이 시기에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공개했고 이것이 군사전략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거부적 억제전략이 최소억제전략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거부적 억제전략이란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방에게 상당한 고통과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 침략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일명 '고슴도치 전략'이라고 한다.

1994년 핵위기 당시 미국이 전쟁 시뮬레이션(워게임)을 통해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미군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점을 확인하고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을 중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사인 142호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해봤더니… 하루만에 240만 명 사상' 참조)

반면 최소억제전략이란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방의 주요 도시 몇 개를 파괴시킬 보복능력을 보여줘 침략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소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를 상대로 구사하는 전략인 셈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능력을 갖추는 순간 최소억제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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