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회분석]③비장한 분위기의 '경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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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만에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가 3박 4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북한은 노동당이 국가와 사회 전반을 이끄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당대회의 결과는 향후 북한이 나아갈 방향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에 NK투데이는 제7차 당대회의 내용이 담긴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중심으로 당대회 결과를 집중 분석하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36년 만에 당대회가 열린 만큼 사업총화보고는 지난 36년 동안의 방대한 경과보고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사업총화보고는 사회주의가 원래 "제국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혁명세력과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전진하는 혁명"이며 "총결기간 조선노동당은 전대미문의 엄혹한 시련과 난관 속에서 사회주의위업을 전진시키기 위한 투쟁"을 진행했다고 경과보고를 시작했다.

'총결기간'이란 6차 당대회가 열렸던 1980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뜻하며 중간에 국가붕괴위기를 겪었기에 경과보고는 시작부터 비장한 분위기다.

사업총화보고는 36년의 기간을 크게 ▲80년대 ▲동구권 붕괴 시기 ▲김정일 시대 ▲김정은 시대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80년대 속도 창조운동

북한은 6차 당대회 직후인 80년대를 큰 성과를 낸 기간으로 평가하였다.

사업총화보고는 이 시기 성과를 크게 두 가지로 꼽았는데 첫째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강령에 따라 전당과 전군을 주체사상화하며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텔리화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다그쳐 사회주의위업의 주체를 튼튼히" 다졌다는 것이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텔리화'는 1980년 6차 당대회를 통해 당규약에 새로 명시된 과제다.

북한의 이론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사회개조, 자연개조, 인간개조"의 영역에서 진행되는데, 이 가운데 '인간개조'의 내용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텔리화'하여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NK조선, 2013.10.30. '주체사상-이론체계')

또한 '혁명화, 노동계급화'는 사람들의 사상의식 수준 차이를 없애는 것이며, '인텔리화'는 사람들의 지식수준,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은 '민중이 역사 발전의 주인이며 동력'이라는 이론에 입각해 성과를 평가할 때도 민중의 성장을 먼저 꼽는다.

사업총화보고가 꼽은 두 번째 성과는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전략적 노선으로 틀어쥐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인민을 조직동원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 수행에서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10대 전망목표란 연간 ▲전력 1천억 킬로와트시 ▲석탄 1억2천만 톤 ▲강철 1천5백만 톤 ▲유색금속 150만 톤 ▲시멘트 2천만 톤 ▲화학비료 7백만 톤 ▲직물 15억 미터 ▲수산물 5백만 톤 ▲알곡 1천5백만 톤을 생산하며 ▲향후 10년 동안 30만 정보의 간석지를 개간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80년대 속도 창조운동'을 통해 80년대 중반까지 10대 전망목표 달성에 순조롭게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영태 연구위원의 '북한50년사 2'에 따르면 전력, 철강, 시멘트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1984년까지 진행된 제2차 7개년계획의 전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80년대 속도 창조운동'이란 천리마운동을 계승해 속도전의 원칙을 전면적으로 구현하는 대중운동을 말한다.

북한은 '80년대 속도 창조운동'을 통해 검덕광업종합기업소에 대규모 선광장을 건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용성기계연합기업소의 1만 톤 프레스 제작, 낙원기계공장의 대형산소분리기 생산, 서해갑문 건설, 창광거리·주체사상탑·개선문·김일성경기장·인민대학습당·빙상관·평양제1백화점·청류관 건설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성과들을 냈다.

[관련기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가 된 비밀은?]

동구권 붕괴

80년대 중반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던 북한은 동구권 붕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되었다.

사업총화보고는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 배신자들의 책동으로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연이어 무너지는 비극적인 사태가 빚어졌으며 이를 기화(핑계)로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공세는 사회주의의 보루인 우리나라에 집중"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업총화보고는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자주적 이상이고 정의이며 그 승리는 필연적이라는 것을 과학이론적으로 논증"했으며 주민들에게 "정치사상교양의 도수를 더욱 높여 전체 인민이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이라는 신념을 굳게 간직"하도록 했다고 보고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과학이론적 논증'으로 대표적인 게 1994년 1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동신문에 발표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논문이다.

이 시기에 북한은 자신들의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탈 사회주의 흐름을 막는 데도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1992년 전 세계 70개 정당들과 함께 발표한 선언인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 일명 평양선언이 있다.

[관련기사: 키르기스스탄 정당, '평양선언'에 동참]

선군정치와 사회주의 강국건설 – 김정일 시대

북한의 노력에도 동구권 몰락과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위축은 계속되었고 북한은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되었다.

여기에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북한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이에 대해 사업총화보고는 "김일성 동지께서 서거하신 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최대의 슬픔이고 상실이었으며 우리 혁명에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서술했다.

또한 ▲미국의 전쟁 압박 ▲극도에 이른 경제봉쇄 ▲극심한 자연재해로 인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서 형언할 수 없는 시련과 난관"을 겪게 되었으며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하였다.

'고난의 행군'이란 원래 항일운동 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유격대가 1938년 말~1939년 초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 일본군의 토벌을 견디며 행군한 것을 말하는데 북한은 90년대 중후반 상황이 항일운동 시기의 '고난의 행군'과 유사하다는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고난의 행군')

북한은 1998년 '고난의 행군'에서 '사회주의 강행군'으로 넘어갔으며 2000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마치고 '구보 행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한편 북한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였다.

사업총화보고는 선군정치를 "총대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군사를 모든 사업에 앞세우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주력군으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가는 김정일 동지식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사업총화보고는 "군사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국방공업발전에 선차적인 힘을 넣었"으며 "반제자주적 입장과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였고 "총대의 위력으로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키고 사회주의를 수호하며 전진"시켰으며 그 결과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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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군정치에 따라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 데 대한 새로운 경제건설 노선을 제시"했으며 "인민군대에서 발휘된 혁명적 군인정신을 온 사회가 따라 배우도록" 해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새로운 높은 단계"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1956년 3차 당대회에서 '중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노선'을 제시해 유지해오다가 선군정치를 전면화한 시기에 중공업을 국방공업으로 대체한 '국방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노선'을 제시했다.

국방공업은 대체로 중공업의 부분으로 볼 수 있기에 중공업 가운데서도 국방공업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국방력 강화에 그만큼 국력을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사업총화보고는 선군정치로 "조국과 인민의 운명의 수호자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것이 노동당의 "최대의 공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선군정치가 국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정치라면 '사회주의 강국건설'은 그에 맞는 국가 발전 목표라 할 수 있다.

사업총화보고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준엄한 투쟁 속에서도 승리의 신심 드높이 조국번영의 앞날을 내다보며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줄기차게 투쟁하여 사회주의 위업을 새로운 단계에로 전진"시켰다고 설명하였다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다룬다.

김정은 시대의 등장

'고난의 행군'이라는 국가 위기사태를 극복하고 80년대 전성기를 향해 빠르게 성장하던 북한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동구권 몰락과 연이은 자연재해로 위기상황을 맞았던 1994년과 달리 이미 성장기에 접어든 북한은 이 상황을 큰 혼란 없이 극복한다.

사업총화보고는 이 시기에 당 제4차 대표자회를 통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수령"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영원한 지도사상"으로 규정하고 "수령의 유훈관철전에로 당원들과 인민들을 조직 동원"하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동당 강화 과정에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전당적인 투쟁을 강도높이 벌리는 한편 당안에 강철 같은 기강과 규율을 확립"했다고 하였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노동당 내부에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기강 해이 등 부정적 현상이 발생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혁신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 사업총화보고는 이 시기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노선"을 제시했으며 "사회주의 건설에서 새로운 조선속도를 창조하며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내달리는 만리마시대"를 열었다며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의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한 손에 무기, 다른 한 손에 낫과 망치'라는 표현으로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처음 제시했으며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이를 전면화하였다. (출처: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군사·경제 병진 노선')

당시는 중-소 분쟁으로 사회주의 진영이 어수선한 상황이었으며 결정적으로 1962년 10월 쿠바 위기로 인해 소련에 대한 신뢰가 크게 무너졌다.

소련이 미국과 타협하면서 쿠바를 도외시하는 모습을 본 북한은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민의 무장화, 전군의 현대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고 국방비에 국가 예산의 30% 이상을 투입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힘을 집중했다.

또한 군사 지원을 요청한 쿠바와 전쟁 중인 베트남에도 막대한 무기와 병력을 지원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국방력 가운데서도 핵무력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으로 전환하였다.

지금까지의 경과보고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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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사업총화보고는 총결기간 경과보고의 결론으로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은 과학이며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견지해 오신 자주적인 혁명노선과 혁명방식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철저히 구현해나가는 길에 우리 혁명의 승리가 있고 민족만대의 번영이 있다"고 정리했다.

다시 말 해 기존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로 승리했으므로 앞으로도 이 노선과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기획연재]당대회분석 목차
①7차 당대회의 의의
②'개혁개방'은 없었다: 전체 체계
③비장한 분위기의 '경과보고': 36년 평가-경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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