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선을 지켜라!]박 대통령도 봤다는 다큐, 무엇이 조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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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상식선을 지켜라 시간입니다.

이 코너는 한국과 해외에서 보도되는 북한 소식들이 과연 ‘상식선’을 지키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이 자리에 문경환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문경환(이하 문): 안녕하세요.

: 이번엔 어떤 주제를 준비했나요?

: 박근혜 대통령이 관람했다는 러시아 다큐영화 '태양 아래'에 대한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 보통 대통령이 영화를 보면 영화 내용과 관련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 아닌가요?

: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탈북자를 초대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꿈을 잃어버리고 어려운 삶을 보내는 북한 어린이들을 우리가 보듬고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그러니까 북한 어린이들은 꿈이 없고 어렵게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 관계자들도 이 영화를 단체관람하고 이 영화를 장병 정신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새누리당도 이 영화를 상영했다고 합니다.

: 일종의 반공영화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화인가요?

북한 어린이를 다룬 영화인가요?

: 이 영화는 러시아 영화감독 비탈리 만스키(Vitaly Mansky)가 북한에 체류하면서 '진미'라는 8살 소녀와 가족, 친구, 이웃의 일상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촬영을 하다 보니 진미와 주변의 삶이 모두 북한 당국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깨닫고 영화의 방향을 바꿔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갔는데 북한은 조작된 주민 생활만 보여줬다, 이런 거군요?

: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 지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 어떤 거죠?

: 우선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게 뭐냐는 겁니다.

: 다큐영화란 사실을 기록한 영화 아닌가요?

: 원래 다큐영화는 사실을 기록한 영화가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을 다룬다고 해서 그게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 전개 방식이나 편집에 따라 감독이 얼마든지 자기 관점으로 사실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인터뷰를 하는데 30분을 이야기했다, 이걸 영화에 그대로 담을 수 없으니 결국 감독이 원하는 발언만 추려서 편집하게 됩니다.

: 거기서 ‘악마의 편집’이라는 게 등장하는 건가요?

: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감독이 악의를 품으면 인터뷰한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인터뷰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다큐영화가 있죠? 농부와 소를 다룬…

: ‘워낭소리’ 말씀인가요?

: 네, 워낭소리도 연출이 너무 많이 개입됐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아예 “비전문 배우들을 동원한 극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연출 없는 다큐멘터리는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다큐멘터리에 연출이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입니다.

: 그러니까 다큐영화도 결국 영화니까 연출이 있고, 이걸 조작이냐 아니냐 따지기는 애매하다는 거죠?

예전에 미국의 유명한 다큐영화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만든 작품들도 보면 극영화와 다큐영화를 넘나들더군요.

: 요즘은 극영화가 다큐영화의 형식을 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SF영화인 ‘디스트릭트9’이 대표적이죠.

: 다큐영화에서 연출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이게 논란이라는 건데 오늘 주제인 ‘태양 아래’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건가요?

: 러시아 감독이 북한에서 다큐영화를 찍겠다고 요청했을 때 북한은 당연히 자신들의 체제를 홍보하는 기회로 생각했을 겁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테고 이걸 비난할 수는 없죠.

특히 북한에 관광 등의 명분으로 들어가 몰래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북한을 비난하는 다큐영화를 만든 외국인이 워낙 많다보니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경계했을 것입니다.

: 어떻게 보면 다큐영화에 들어가는 ‘연출’이라는 요소는 감독이 판단하는 건데 이번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북한이 ‘연출’을 직접 했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지금 만스키 감독은 북한이 설정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다큐영화에도 연출이 있다지만 사실을 조작한 건 문제 아닐까요?

: 만약 만스키 감독의 주장대로 부모의 직업을 바꾼다거나, 사는 집을 바꾼 거라면 충분히 논란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이 다큐영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도 따져볼 필요가 있겠죠.

만약 다큐영화에서 그 정도 설정은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그냥 북한과 만스키 감독 사이에 다큐영화에 대한 입장 차이로 생긴 오해로 볼 수 있는 문제거든요.

: 네, 이 자리에서 북한의 영화이론을 분석하긴 어려우니까 이 정도로 정리하죠.

아까 초반에 두 가지 지점을 짚어야 한다고 했는데 두 번째 지점은 뭔가요?

: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가 어떤 사람이냐는 게 두 번째 지점입니다.

만약 북한이 만스키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알아서 영화 찍도록 보장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혹시 저 사람이 우리 흉보는 영화 찍으려고 ‘악마의 연출’을 하지 않을까” 하고 경계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일단 인터넷을 찾아보면 우크라이나 유대인 출신의 러시아 영화감독이라고 나오던데요.

: 맞습니다.

그리고 언론 인터뷰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인물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어떻게 억압받고 얼마나 제한됐는지에 대해 궁금했었죠. 그래서 공산국가인 쿠바까지 가서 ‘쿠바의 조국 아니면 죽음’ 이란 다큐 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라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뭐, 사회주의 국가의 자유, 인권, 이런 문제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신기한건 북한이 이런 반공사상을 가진 감독의 촬영을 허용했다는 거네요.

그것도 쿠바에서 이미 반공영화를 만든 인물인데.

: 저도 참 신기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감독이라 북한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그 과정을 알아봤습니다.

영국 신문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이 영화는 만스키 감독 촬영팀과 북한 정부가 공동제작을 하고 북한 정부가 대본을 통제하기로 합의해 촬영이 허락됐다고 합니다.

만스키 감독도 대본을 북한 정부가 썼다고 얘기했습니다.

: 그러면 북한 정부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하고 대본을 쓰면 만스키 감독이 연출과 촬영, 편집을 하는 게 계약 내용이라는 거군요.

뭐, 만스키 감독의 성향을 보고 북한으로서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만든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런데 절차만 따지자면 만스키 감독이 계약을 위반한 셈이 됐습니다.

대본대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일종의 몰래카메라를 찍어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게 러시아에서도 문제가 됐습니다.

미하일 쉬비드코이(Mikhail Shvydkoy) 러시아 전 문화부장관은 만스키 촬영팀이 공동제작자인 북한 정부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마땅히 이를 부끄러워해야한다고 질타했고 푸틴 대통령의 선임보좌관도 공개 비난을 했습니다.

러시아 문화부는 아예 영화 크레디트 타이틀에서 명의를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그렇군요.

그러면 만스키 감독이 주장하는, 북한이 연출에 간섭했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계약 위반 아닌가요?

: 연출 개입 문제는 감독과 북한 당국이 어떤 계약을 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계약 조건 중에 공동제작자로서 북한 당국이 연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지, 반대로 제작자는 연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 저희가 계약서를 볼 수 없으니 이것도 이 정도로 정리해야겠네요.

그런데 원래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진 감독이다 보니 북한에서 겪은 일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터뷰했던데요, 그 내용은 어떻습니까?

: 사실관계가 다른 내용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신문이 3개뿐이라고 하거나, 신문을 가지고 출국할 수 없다고 하거나, 북한 영화에는 키스신이 전무하다는 얘기는 다 사실이 아닙니다.

또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과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거나, 북한 주민들이 간단한 자기 의사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말도 실제 북한 주민을 만나본 다른 외국인들의 증언과는 차이가 큽니다.

뭐 만스키 감독이 만난 사람들이 특이해서 그랬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 아무래도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다보니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선입견과 관련해서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 설명을 했더라고요.

: 아, 박노자 교수 말씀이시죠?

: 네, 한국에서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죠.

박노자 교수는 만스키 감독이 ‘근본주의적인 자유주의자’며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서 북한을 ‘지옥’이라고 느끼겠지만 이는 단순 무지에 기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오리엔탈리즘이라면 서양인이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동양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본다는 선입견을 말하는 거죠?

: 그렇습니다.

박 교수는 만스키 감독이 “아무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북조선론’을 펴는 것인데,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이렇게 ‘과감한 무식’을 보여준다면 바로 수정 당하고 창피 당하죠. 한데 북조선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도 다 통하고, 무서운 이야기할수록 인기입니다”라면서 “구미권과 약간이라도 다른 모든 사회들이 다 악이라는 ‘진리’, 저렇게 믿는 인간들이야말로 최악의 전체주의자가 아닌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 네, 상당히 강하게 비판했네요.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정리를 해 주시죠.

: 저는 이번 논란을 보면서 예전에 했던 TV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가 떠올랐습니다.

: 네? ‘패밀리가 떴다’면 옛날에 ‘1박2일’과 경쟁하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말씀인가요?

: 그렇습니다.

이게 나름 잘나갔는데 갑자기 대본이 유출되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홍역을 치렀죠.

: 저도 기억나네요.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해놓고 대본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많은 사람들이 배신당했다고 하던데, 저는 말이 ‘리얼’이지 어떻게 대본 없이 방송하냐는 생각을 해서 별 신경 안 썼습니다.

: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사실 어느 정도는 대본이나 연출이 있게 마련인데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진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결국 어느 정도까지 연출이나 상황 설정을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고 이건 사람마다 가치판단이 다를 수 있는 것이죠.

정해진 이론은 없습니다.

이번 다큐영화 논란도 결국 이런 차이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이걸로 상식선을 지켜라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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