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여행]북한의 긍지가 읽히는 판화와 보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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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여행]은 다양한 북한 사진들을 통해 독자분들과 직접 북한여행을 가듯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뵙는 ‘사진여행’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북한의 회화를 감상하시겠습니다.

지금까지 인물화, 조선화를 보셨는데요.

오늘 보실 회화작품은 판화와 보석화입니다.

판화라면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한번쯤은 해봐서 익숙하지만 보석화는 낯선 이름인데요.

작품들이 소개된 ‘만수대 예술 스튜디오(www.mansudaeartstudio.com)’는 보석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석화는 여러가지 색깔의 돌가루를 굳은 판위에 뿌려서 제작하는 북조선(북한)의 독특한 기법입니다.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이 기법은 이전에는 석분화로 불렸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 기법이 조선(북한)의 진귀한 돌들을 이용하여 창작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 이름을 조선보석화로 명명하도록 하였습니다.

보석화뿐만 아니라 판화에 대한 설명도 독특합니다.

조선(북한)은 인쇄를 이용하여 영상이나 수표를 제작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금속활자인쇄는 1230년경에 조선에서 창안되었으며 이것은 구텐베르그보다 200년 앞선 것이며 최근에는 그 년대가 더 이전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판화에 대하여 언급한다면 첫 인쇄는 목판을 이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8만개의 목판은 불교성전을 서술하였으며 시기는 1021년경입니다.

민족적 관점에서 우리 민족이 가진 판화의 위대한 역사성을 서술하고 있는데요. 미술작품에서도 민족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특히 ‘만수대 예술 스튜디오’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민족적 관점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아래는 북한 판화에 대한 설명입니다.

북조선(북한)의 판화는 잉크를 이용하는데 서방에서 쓰는 것보다 색채가 더 밝습니다.
이 웹사이트에 전시한 판화는 주로 목판으로 창작한 것이며 리노레움(리놀륨)을 이용한 것도 있습니다.
수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복제본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최고 5개가 될 때도 있지만 보통 2~3개정도이며 현대미술개념에 준하여 볼 때 매개는 원본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관료적> 개념의 중요성을 시인하지 않는 북조선(북한)의 전통에 따라 복제본의 수는 대체로 밝혀지지 않으나 복제본수는 극히 적다는 것을 담보합니다.

사진 게재를 허락해준 '만수대 예술 스튜디오'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자, 그렇다면 북한 판화와 보석화를 감상하시겠습니다.

 

'춤추는 학들' 김명혁 2006년 80 x 117 cm

'춤추는 학들' 김명혁 2006년 80 x 117 cm

보석화입니다. 

돌가루를 뿌렸다고 하는데 제 눈으로는 붓으로 그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에 살랑이는 학 날개끝 깃털까지 보입니다. 

두루미에겐 없는 학의 머리에 꽃처럼 피어난 붉은 정수리의 정확하고 미세한 표현은 북한 보석화의 자긍심이 괜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학도 학입니다만 들판위의 소금처럼 뿌려진 들꽃들과 안개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안개낀 농촌' 리근석 2004년 60 x 80 cm

'안개낀 농촌' 리근석 2004년 60 x 80 cm

'범' 원세봉 2006년 110 x 90 cm

'범' 원세봉 2006년 110 x 90 cm

살아 있습니다!

저는 얼른 도망갈 테니 더 감상하고 싶으시면 남아 계시길. 

'독수리' 홍철만 2006 60 x 80 cm

'독수리' 홍철만 2006 60 x 80 cm

'강가의 학들' 박명혁 2005년 62 x 110 cm

'강가의 학들' 박명혁 2005년 62 x 110 cm

'2월의 대동강' 함영효 2006년 60 x 120 cm

'2월의 대동강' 함영효 2006년 60 x 120 cm

'결혼식날 신부' 주태식 김영호 2006년 146 x 85 cm

'결혼식날 신부' 주태식 김영호 2006년 146 x 85 cm

곱습니다. 

돌가루로 저 고운 신부의 눈매와 입매를 살릴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결혼식날 수줍은 신부의 미소가 생생합니다.

 

아래 작품들은 판화입니다. 

'배사공' 황인제 1995년 16 x 23 cm

'배사공' 황인제 1995년 16 x 23 cm

'금강산' 황인제 2005년 39 x 78 cm

'금강산' 황인제 2005년 39 x 78 cm

'금강산' 황인제 2005년 23 x 117 cm

'금강산' 황인제 2005년 23 x 117 cm

'달 밝은 밤' 황인제 1992년 	50 x 39 cm

'달 밝은 밤' 황인제 1992년 50 x 39 cm

'달빛' 황인제 1981년 35 x 53 cm

'달빛' 황인제 1981년 35 x 53 cm

'다뉴브강가' 황인제 2006년 93 x 144 cm

'다뉴브강가' 황인제 2006년 93 x 144 cm

'다뉴브강가' 2006년 41 x 110 cm

'다뉴브강가' 2006년 41 x 110 cm

'다뉴브강가' 황인제 2007년 41 x 100 cm

'다뉴브강가' 황인제 2007년 41 x 100 cm

'밤의 을밀대' 	황인제 1998년 58 x 82 cm

'밤의 을밀대' 황인제 1998년 58 x 82 cm

'빛' 황인제 2003년 33 x 53 cm

'빛' 황인제 2003년 33 x 53 cm

시선을 떼지 못하겠습니다. 

무심하게, 덩그러니 새겨진 해가 만들어낸 풍광은 강렬하며 역동적입니다. 

은은한 자연의 빛을 목판새김으로 이렇듯 강렬하고 미세하게 표현해 우리에게 선물해준 작가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수차' 황인제 2003년 34 x 42 cm

'수차' 황인제 2003년 34 x 42 cm

'은행나무' 황인제 1993년 23 x 30 cm

'은행나무' 황인제 1993년 23 x 30 cm

'어린시절' 황인제 2003년 46 x 82 cm

'어린시절' 황인제 2003년 46 x 82 cm

'폭포' 황인제 1993년 27 x 29 cm

'폭포' 황인제 1993년 27 x 29 cm

'피리노래' 황인제 1999년 38 x 41 cm

'피리노래' 황인제 1999년 38 x 41 cm

목동의 피리소리에 황소는 힘든 줄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나 황소를 아끼는 목동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한데요.

소의 머리며 목에 메단 장식들이 정성스럽습니다. 

목동의 피리소리에 잠시 쉬어가도 되겠습니다.

'해안가의 저녁' 황인제 1998년 58 x 82 cm

'해안가의 저녁' 황인제 1998년 58 x 82 cm

제 고향 앞바다를 보는 듯 합니다. 

어릴 적에도 그랬죠.

집에서 가까운 부둣가에 나가면 멀리 지평선으로 섬이 그림져 있고 잔잔한 바다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림처럼 통통배 한 척이 바다를 가르는지 해를 가르는지 '나는 몰라라' 하며 멋진 그림을 망치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속이 상했더랬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 그 시간에 나가서 바다를 보노랄 때 통통배 한 척이 지나가지 않으면 이빠진 허전함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자연은 그렇게 사람의 생활과 어우져야 제 멋을 내나 봅니다. 

 

'호숫가의 조정' 황인제 2006년 40 x 61 cm

'호숫가의 조정' 황인제 2006년 40 x 61 cm

판화를 보고 나니 판화를 유독 좋아했던 중국의 루쉰이 생각납니다. 

판화를 새기며 중국의 젊은이들과 소통했던 루쉰이 희망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강연한 글을 소개하며 오늘의 사진여행은 마칠까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라고는 그래도 장래에 대한 희망, 그것뿐입니다. 희망이란 존재와 한몸으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은 곧 빛입니다. 역사가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세상 사물 중 어둠으로 인해 영원히 생존을 누렸던 예는 없습니다. 

어둠은 멸망해 가는 사물과 함께하는 것으로, 그 사물이 멸망하면 함께 멸망하며, 영원히 존재하지는 못합니다. 어둠의 부착물이 되지 않고 빛을 위해 스러져갈 때, 우리에게는 분명 영원히 빛나는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강연 기록' 중에서. 1928)

박준영 객원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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