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44]원산에서 찾은 노래방

Print Friendly, PDF & Email
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오신다는 노 박사님을 두고 나와 김미향 안내원, 리영호 운전기사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와서 쉬려는데 천천히 7층 객실로 걸어서 오겠다고 한 노 박사님이 제법 한참만에야 문을 두드리신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데 9층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나서 올라가보니 노래방 시설이 되어있는데 손님은 아무도 없고 음악을 켜놓고 봉사원이 혼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더라고 하면서 함께 올라가서 모두에게 전화를 하여 불러서 한잔 하면서 노래라도 부르자고 하셨다.

우리가 머문 해뜨기 직전의 원산의 동명호텔. 맨 위층에서 관광객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할 수 있었다. ⓒCJ Kang

우리가 머문 해뜨기 직전의 원산의 동명호텔. 맨 위층에서 관광객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할 수 있었다. ⓒCJ Kang

나도 음악소리는 들었지만 꼭대기 층에 그런 시설이 되어있는 줄은 모르고 예사로 지나쳤는데 노 박사님은 궁금한 것은 확인해보는 기자정신으로 계단을 올랐던 것이다. 밤중이라 창밖으로 밤바다의 경치가 잘 보이진 않지만 전망이 좋은 이 호텔의 꼭대기 층에 이렇게 원산을 찾는 관광객을 위하여 작은 홀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놓은 것이었다.

호텔엔 객실이 거의 다 찰만큼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이 많았는데도 사회주의 북부조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아예 이런 시설은 기대하지를 않는 것인지 몰라도 우리가 그날 저녁의 유일한 고객이 된 셈이었다. 노 박사님이 우리를 맞은 봉사원에게 아까는 무슨 좋은 일로 그렇게 신나게 춤을 추었느냐고 물어보니 2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그 봉사원은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심심하여 음악을 켜놓고 춤을 연습하는 중이었다면서 얼굴을 붉힌다.

내가 25년 전 금강산에 갔을 때 금강산호텔에도 맨 위층에 이와 비슷한 시설이 되어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 나와 함께 방을 쓰던 분은 교회 장로님이었다. 그래서인지 저녁에 객실에서 무료하게 보내느니 술 한 잔을 하러 가자니까 나 혼자 가라고 하였다.

제법 넓은 홀이 있었고 봉사원이 혼자 접대하였는데 홀에는 네 사람의 재일동포들이 술잔을 나누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재일동포들은 2세 사업가들로 우리말이 약간 서툴렀다. 대화를 나눠보니 북부조국을 종종 찾는데 조국을 위해서 제법 큰 돈을 기부하기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리로 나를 청하여 미국에서 온 나를 따뜻이 맞이해주며 여러가지 일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함께 노래도 불렀다. 일본의 주소도 적어주면서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할만큼 처음 만난 동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89년 금강산을 찾았을 때 인근 식당의 봉사원과 함께. 맨 왼편의 남자는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로 당시 이 식당의 지배인이었다. ⓒCJ Kang

89년 금강산을 찾았을 때 인근 식당 봉사원과 함께. 맨 왼편은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로 당시 이 식당의 지배인이었다. ⓒCJ Kang

 노 박사님의 전화를 받고는 각자의 방에서 긴 하루 일과로부터 쉬려던 안내원 미향동무가 먼저 9층의 홀로 올라오고 뒤이어 운전기사 영호동무가 올라왔다. 며칠간의 일정과 오늘의 긴 여행으로 피곤하였겠지만 겉으로 그런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노 박사님의 제의로 함께 여행하는 동무로서 원산에서의 밤을 이제 좀 더 뜻깊게 보내게 된 의미로 건배를 하였다.

혼자서 일하는 봉사원이 맥주에 안주를 내어오느라 바쁘다. 김미향 안내원이 안주로 주문한 마른 명태를 좀 더 먹기 좋도록 아주 고르게 찢어서 내게 권한다. 명태를 이곳에서 북어라는 말 대신 무어라고 다른 단어로 불렀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찢어서 먹는 명태와 땅콩이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안내원과 운전기사 두 동무가 며칠을 함께 지낸데다 이렇게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여행 스케줄과 상관없이 맥주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 모두 한가족이 된 듯 스스럼없이 되어 편안하다.

봉사원에게 노래방 시설을 켜달라고 하여 살펴보니 모두 북부조국의 노래들뿐이다. 여기서 <심장의 남는 사람>을 불렀다.

내가 한해 전에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으니 이 노래는 영화 주제가인 셈이다. 그 내용은 기차에서 여주인공인 기자가 어떤 기업소의 책임일꾼을 우연히 만나 처음엔 호감을 갖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신이 찾아가는 곳이 그가 일하고 있는 기업소였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기사를 쓰게 되면서 차츰 그 책임일꾼의 자신을 희생하면서 공동체를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 흠뻑 빠져드는 이야기였다.

여주인공은 자신을 좋아하고 선물공세를 하며 외국출장을 자주 가면서 무역일을 하지만 사기꾼의 기질이 있는 남자친구를 이 사람과 비교하면서 결국엔 절교를 선언하는데, 그러면서 홀아비로 아이 둘을 제대로 뒷바라지하기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동체를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는 이 책임일꾼에게 그녀의 마음이 한없이 다가가는 주제의 영화였다. 그는 그렇게 그 여주인공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었다. (노래방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2015.2.27.)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