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를 가다⑪ 평양제1교회 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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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는 총 20회에 걸쳐 북한의 '범 기독교 교회'들을 탐방한 '북한교회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남한이나 서구식 기독교가 아닌 '북한식 기독교'의 실상을 살펴보며 마치 초대교회 형태처럼 정착한 '북한식 사회주의 교회'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최재영 목사 이메일: 9191jj@hanmail.net)

편집자 주: 통일뉴스 동시 게재

 

남측 주도로 세워진 최초 민간교회로서의 존재가치

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이하 예장 통합)의 '평양 제1교회' 건축 프로젝트가 입안되고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 본 후 남과 북의 교회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렵게 합의해 탄생시킨 민간교회라는 것에 대해 그 의미와 존재가치를 크게 부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측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하 조그련)의 여건과 여러 가지 제약들 그리고 예장 통합측의 과욕과 북에 대한 몰이해 등이 겹쳐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효과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도 생각한다. 또한 정식 '교회당'이 아닌 단순한 '기도처소'의 용도로 탄생한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함과 동시에 그나마 소박하게라도 맺은 작은 결실을 다행스럽게도 생각했다.

나는 이 예배당이 관리실, 배양실, 실험실을 갖춘 거대한 온실과 공존하며 유지되는 것을 감안해 '다용도 교회'로 분류했으나 실제로 목회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장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 '휴무교회' 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명목상 교회당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폐쇄교회'로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교회 설립과정에서 북측 사회의 종교적 정서가 점차 누그러지고 있는 조짐들도 발견했고 진정으로 북측이 남측 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는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민족공조와 평화통일을 마치 예수의 지상명령처럼 여기는 북측의 기독교는 '평양 제1교회' 건축 과정을 통해 남측교회와 신자들에게 종교적 연대에서 출발해 민족공조의 연대까지 원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북 전체 사회에서 조그련의 사회적 위상이 어떠한지도 알 수 있었고 최근의 북 당국은 기독교인들에 대해 기존 민족종교나 토착종교들보다도 관심과 후원을 더 많이 하고 있음도 드러났다. 온실건축과 동시에 지어지는 교회건축 프로젝트는 북측의 필요를 지원해주며 동시에 교회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과 북의 공감대 형성에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북측 조그련 본부에서 오경우 서기장과 대담하는 최재영 목사. ⓒ최재영 목사

북측 조그련 본부에서 오경우 서기장과 대담하는 최재영 목사.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기도처소'가 세워지기까지의 12가지 과정들

2003년 11월 26일, '평양 제1교회'를 건축한다는 최초의 언론 발표가 있은 후 6개월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04년 5월 1일, 드디어 평양에서 기공식이 열렸고 그로부터 또 다시 6개월이 지난 2004년 11월 22일엔 건축에 관한 남측 통일부의 정식 승인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후 남북 양측 교회간의 이견과 협상 조율 과정 때문에 또다시 5개월의 침묵과 줄다리기가 있은 후 다시 문제가 타결되어 마침내 2005년 3월 16일, 21일 양일에 걸쳐 건축자재가 인천항을 통해 평양으로 운송되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그후 공사가 시작된 지 8개월만인 2005년 11월 11일, 남측 예장 통합 교단의 총회장과 임원들이 공사가 마무리 된 '평양 제1기도처소'를 방문해 역사적인 첫 예배를 드리며 준공식을 드렸고 또 다시 6개월의 시간이 흐른 2006년 5월 12일이 되어서야 다시 예장 통합 교단의 이북 4개노회 회원들과 교단 총회장이 평양을 방문해 제2차 방문 예배를 드리며 '평양 제1교회' 헌당식 예배를 감동적으로 드렸다.

이번 회는 최초의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부터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게 성사됐는가를 살펴 본 후에 '평양 제1기도처소'가 건축되기까지 그간의 과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리온실 우측에 세워진 온실관리동 모습. 이 건물 2층에 '평양 제1교회 기도처소'가 있다. ⓒ최재영 목사

유리온실 우측에 세워진 온실관리동 모습. 이 건물 2층에 '평양 제1교회 기도처소'가 있다. ⓒ최재영 목사

'김일성화 김정일화' 전시장 출구 부근의 필자. 뒤로 제2온실과 온실관리동이 보인다. ⓒ최재영 목사

'김일성화 김정일화' 전시장 출구 부근의 필자. 뒤로 제2온실과 온실관리동이 보인다. ⓒ최재영 목사

'김일성화 김정일화' 관람을 마친 평양시민들의 뒤로 온실관리동이 보인다. ⓒ최재영 목사

'김일성화 김정일화' 관람을 마친 평양시민들의 뒤로 온실관리동이 보인다. ⓒ최재영 목사

교회건축에 관한 최초 발표는 남측의 일방적 주장

2003년 11월 26일, 남측의 예장 통합 산하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이하 남북위)'는 아래와 같이 "대동강변 200평 부지에 가칭 '평양 제1교회'를 건축키로 합의했다"며 최초로 언론에 공개했다.

"평양 제1교회는 2층 건물에 300-400석의 규모의 예배당으로 건축하며 총 10억원의 건축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예산은 예장 통합 교단의 이북 4개노회(평양노회, 평북노회, 용천노회, 함해노회)가 중심이 되어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이며, 현재 좋은 교회 모델을 찾고 있는 중이다. 설계가 끝나는 대로 공사에 착수해 2004년 상반기 중 완공할 계획이며 북측이 대지 제공과 시공을 맡게 될 것이며, 예장 통합측은 설계와 자재, 인건비 등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발표를 접한 한국교회는 적극적인 환영과 기대감에 들떴으나 막상 내용면에 있어서는 북측의 입장과 의사를 일부 무시한 남측의 일방적 주장이었으며 북측 조그련과 남측의 예장 통합측이 작성한 합의서를 일부 변개시킨 내용이었다. 또한 이 당시는 10억원의 공사비도 확보된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 평양봉수교회 건축위원장이며 '평양 제1교회' 건축에 대한 남북 합의서 내용을 모두 다 파악하고 있는 통합측의 어느 인사는 필자와 만나 다음과 같이 증언해 주었다.

"그 당시 봉수교회가 위치한 언덕에 있는 평양신학원 캠퍼스 옆에 제1온실을 이미 완공했고, 이어서 동평양지역에 제2온실을 건축하던 중에 이 온실을 관리하고 지원할 신축건물이 또 필요하게 됐다. 마침 제2온실 옆에는 200평 정도의 부지가 남아 있길래 우리측에서 먼저 북측 조그련에 요청해 이 200평에 교회당을 건축하는 문제를 타진했으나 결국 북측이 반대 입장을 보여 성사되지 못했다. 그후 북측과 200평 부지에 온실관리동을 짓기로 합의하고 1층에는 '온실관리동', 2층에는 '기도처소'를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예장 통합측 남북위에서는 건축기금을 모금하려면 '평양제일교회'로 표기해야 한다면서 합의서에 '교회'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이때부터 남북간에 큰 어려움이 발생했고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원래 남북간에 공식적으로 교회당 건축을 합의한 적이 없는데도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모금하려면 '평양에 교회당을 건축한다'고 홍보해야 더 효과적으로 모금이 된다면서 교단 산하 전국의 신자들과 언론을 대상으로 마치 평양에 실제 교회당 건물만 단독으로 건축되는 것처럼 과장해서 홍보한 것이 오해의 불씨가 된 것이다.

또한 북측의 배려로 가까스로 '작은 예배당(기도처소)'이 들어서기로 한 후에도 교단 관계자들과 언론은 지속적으로 '평양제일교회' 건축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들떠 있었고 그 결과 월간조선 조갑제씨와 미래한국신문 김성욱씨 등 보수언론인들에 의해 '평양제일교회' 건축과 관련한 낭설들과 억측들이 난무했고 북측은 근거없는 오해와 매도를 당하게 된 것이다.

'교회당'과 '기도처소'는 서로 다른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남측에서 굳이 '교회'라는 단어를 자꾸 고집해 북측이 난색을 표하며 이견을 보였던 것이다. 온전한 교회당을 건축하고 싶어하는 것은 남측의 희망사항일 뿐 북측 조그련은 이북 영토에 더 이상의 교회당 건축을 원하지 않았고, 마음대로 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 후 예장 통합측이 이북 전역에 세우기로 한 11개 교회당 건축 계획도 북측이 수용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남측 기독교에서 북측 조그련에 아무리 솔깃한 제안을 하고 거액의 재정을 투자해 멋진 교회당을 짓고 싶어해도 북측 조그련은 막판 협상 과정에서 '00교회'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그 대신 '문화센터'나 '복지센터'같은 명칭과 용도를 원할 뿐이다. 이같은 사례는 '평양장대현교회'를 재건하려던 예장 합동 교단의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한국 개신교단의 양대 산맥인 예장 통합측과 합동측 교단은 교세확장 차원에서의 대북사역과 교회재건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 진정으로 북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갈급해 하는가에 대한 민족문제는 고민하지 않았기에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양 교단은 북에 대한 내재적 접근보다는 일방적인 외재적 접근 방법차원에서 재정력을 과시하다 보니 북측에서는 소위 제국주의적 선교와 포교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을 다른 의도를 지닌 것으로 오해하며 경계심을 두고 대하는 것이다. 민족의 관점에서 어떻게 통일지향적 민족공조를 이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니 북측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장 통합 제88회 총회장에 당선된 김순권 목사(경천교회). 총회장으로서 북측 조그련 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최재영 목사

예장 통합 제88회 총회장에 당선된 김순권 목사(경천교회). 총회장으로서 북측 조그련 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최재영 목사

예장 통합 제89회 총회장에 당선된 김태범 목사(대구삼덕교회). 김 목사는 2004.5.1. 기공식 설교를 했다. ⓒ최재영 목사

예장 통합 제89회 총회장에 당선된 김태범 목사(대구삼덕교회). 김 목사는 2004.5.1. 기공식 설교를 했다. ⓒ최재영 목사

예장 통합 제90회 총회장에 당선된 안영로 목사(광주서남교회). 안 목사는 2006. 5.12 봉헌식 설교를 했다. ⓒ최재영 목사

예장 통합 제90회 총회장에 당선된 안영로 목사(광주서남교회). 안 목사는 2006. 5.12 봉헌식 설교를 했다. ⓒ최재영 목사

 

1. '평양 제1교회' 건축 합의문 통과

북측 조그련과 남측 예장 통합측 남북위는 2004년 3월 22일 북경에서 만나 3개 항에 대한 합의서에 서명하고 정식 합의에 이른다.

1.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평양시 대동강구역 청류동 동평양대극장앞 대동강변에 1층 관리실, 2층은 교회용을 건축한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서 교회건축에 필요한 설계와 공구 및 자재를 지원하고 조선그리스도연련맹측에서 대지정리와 건축공사를 실시한다.
3. 두 단체는 교회 건축사업을 조속히 실시한다.

합의서와 함께 병기된 설계안에 따르면 '교회용으로 건축될 2층은 강단,방송실 및 계단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회중석으로 설계한다'고 표기했으며 남북위가 북경에서 귀국한 지 1주일이 지난 3월 30일, 합의문에 대한 교단의 승인 절차를 받아 확정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남북위'와 '이북 4개 노회'와의 합의와 더불어 조그련측이 전체 이북노회 차원에서 요구했던 사항을 수용함에 따라 이뤄지게 됐다.

당초 '평양 제1교회' 설계와 관련한 이견으로 건축 모금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나,남북위 측에서 양측의 의견을 조율해 1층은 관리실, 2층은 교회용으로 한다는 것으로 합의하고,이 합의에 준한 설계를 양측이 수용함에 따라 이뤄지게 됐다. 그러나 남북위와 조그련,그리고 남북위와 이북 4개 노회간의 합의는 이뤄졌으나 노회의 공식 추인과정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평양 제1기도처소' 건물 모습. 대동강변 방향으로 출입구가 있다.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기도처소' 건물 모습. 대동강변 방향으로 출입구가 있다.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교회' 준공식 예배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들.(2005.11.11.)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교회' 준공식 예배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들.(2005.11.11.)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교회' 준공식 예배에 참석한 남북 대표단의 기념촬영 모습.(뒷줄 좌측부터 평양 칠골교회 백봉일목사, 두 번째 봉수교회 건축준비위원장 김용덕 장로, 여섯째 안영로 총회장, 일곱째 조그련 오경우 서기장)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교회' 준공식 예배에 참석한 남북 대표단의 기념촬영 모습.(뒷줄 좌측부터 평양 칠골교회 백봉일목사, 두 번째 봉수교회 건축준비위원장 김용덕 장로, 여섯째 안영로 총회장, 일곱째 조그련 오경우 서기장) ⓒ최재영 목사

 

2. '평양 제1교회 건축위원회' 출범

그후 보름 후인 2004년 4월 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남북위 실행위원들과 이북노회협의회 임원, 각 이북노회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석회의를 갖고 '평양 제1교회' 건축지원에 관한 협의를 했는데 위원회 임원들을 위원장으로 이북노회협의회 회장과 이북 4개 노회장과 노회 관계자를 부위원장으로 하는 '평양 제1교회 건축위원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건축을 추진키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4월 30일 부총회장 김태범 목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평양에 파견해 평양 제2온실 준공식과 함께 그 옆에 짓게 되는 '평양 제1교회' 기공식을 동시에 갖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3. '평양 제2온실' 준공식

이런 가운데 2004년 5월 1일, 예장 통합과 조그련의 우호와 협력을 상징하는 평양 제2온실 준공식이 현장에서 열렸으며 준공식을 마친 후에는 '평양 제1교회' 기공식이 연이어 열렸다. 이를 위해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남북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구룡 장로와 교단 부총회장 김태범 목사가 방북해 이 두 가지 행사를 모두 참석했다.

그러나 남북위는 북한교회재건 기금 중에서 1억원을 제2온실 건축 및 '평양 제1교회' 건축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부에 요청했으나 재정부는 보다 상세한 내용을 확인한 후에 지급하겠다며 무기한 보류했다. 이로써 남북위는 2억 8천만원에 상당하는 제2온실 건축비의 부족분을 시급히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4. '평양 제1교회' 기공식

2004년 5월 1일, 역사적인 '평양 제1교회' 기공식이 열렸다. 이날 기공식에는 남측 대표단장 김태범 부총회장과 남북위 그리고 이북 4개 노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평양 제1교회 건축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평양 제1교회'가 북측의 공식교회인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 이은 제3의 교회로서 분단 이후 남측 주도로 세워지는 최초의 민간교회라는 점에 그 의미를 갖고 설레임속에 기공식을 진행했다고 한다.

동평양대극장 앞 대동강변 대지 600평은 북측 정부와 조그련이 제공하는 부지로서 이중 400평은 제2온실을, 그 옆 200평 부지는 온실관리동을 건축해 1층은 관리실, 2층은 교회용도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제2온실 준공식에 이은 '평양 제1교회' 기공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남북교회 간의 합의를 재확인하고 양측의 우의와 협력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5. '평양 제1교회' 건축을 위한 사업설명회

기공식을 마친 두 달 후인 2004년 7월 5일, 예장 통합측 남북위는 '평양 제1교회' 공사를 위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건축업체 선별 기준에 대해서 '교회 시공은 단순히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기업의 자산 안정도와 교회를 시공하는 목적을 확인하고 견적서상에 기재된 우선 협력대상 업체가 중심이 될 것' 이라고 공고했다.

예배당 건축은 먼저 계약금이 납부되고 잔고증명서가 발부된 이후 통일부의 사업협력 승인이 떨어지면 공사에 착수할 수 있으며 본격적인 예배당 공사는 예장 통합의 총회가 성료되는 10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로 결의했다.

6. '평양 제1교회' 만의 전용 건물은 불가능할 듯

한편 2004년 7월 8일, 예장 통합 교단의 김순권 총회장은 '평양 제1교회' 기공식 과정에서 '예배당 1층이 온실로 사용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종자연구와 보관실 용도로 쓰여질 것'이라고 밝혔으며 새로 남북위 위원장을 맡은 손달익 목사도 '평양 제1교회 1층에 온실이 들어선 이 건물을 과연 교회로 볼수 있겠는가?'라는 세간의 의문에 대해, '이미 준공이 끝난 400평만이 온실로 쓰이고, 예배당 1층 200평 부지에는 관리실과 채소종자 연구 및 보관실이 들어설 것"이라고 답변해 이 건물이 교회당 전용건물이 아님을 이때 확실히 확인시켜 주었다.

문제의 발단은 건축준비위원회가 전국의 신자들에게 '평양에 교회가 세워진다'며 과장되게 홍보함으로써 교단소속 신자들과 언론이 충분히 오해하게 만든 것에 기인했다. 예장 통합측 남북위와 건축위는 '애초부터 건축의 용도와 목적이 온실이었으며 교회당 건축은 남측의 특별 요구사항으로서 협상 항목에 포함된 것이지 최종 결정된 사항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일반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7. '평양 제1교회' 시공자로 '(주)엘리트 공영'을 선정

교회만 사용하는 전용 건물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한 달이 지난 2004년 8월 10일, 남북위는 실행위원회를 갖고 '평양 제1교회' 건축자 선정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이를 결정했다. 한편 총회 보고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평양 제1교회' 건축자로 강상용 사장(장로)이 이끄는 주식회사 '엘리트 개발 공영'을 선정했다.

이 회사는 이미 평양신학원 건축 등 대북사업 경험과 함께 봉수교회 재건축도 담당하고 있는 중견회사로서 견적서상으로 가장 현실적인 견적안을 제시해 최종 건축자로 선정됐다.

8. 통일부의 '평양 제1교회' 설립 최종 승인

예장 통합 총회는 정기총회를 열어 부총회장이던 김태범 목사가 총회장에 당선됐다. 때마침 답보상태에 있던 정부 승인 문제도 해결되기에 이르렀다. 남북위는 2004년 11월 22일, 통일부 문화교류과로부터 '평양 제1교회' 건립에 대한 최종 승인을 통보 받았는데 통일부의 승인 조건은 '물자 반출입시 승인절차 및 관련법규 등을 준수해 줄 것과 이 사업이 민족동질성 회복과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길 바란다"며 허가했다.

건축준비위는 그로부터 한 달 후인 2004년 12월 중순경에 모임을 갖고 2005년 6월경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수 있는 윤곽을 잡고 2005년 1월중 건축 기자재의 북송과 함께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6월에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4년 5월 1일 기공식을 가졌으나 그 동안 북측의 사정과 통일부의 승인절차가 지연되면서 공사가 중단됐으나 다시 활력을 얻어 재개되기 시작했다.

9. '평양 제1교회' 준공일을 '6월 15일'로 선포

2005년 1월 10일, 예장 통합 총회장 김태범 목사는 사무총장 조성기 목사와 함께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총회 주요정책 및 사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2005년 예장 통합 주요사업계획'을 발표하며 '평양 제1교회' 설립을 가장 큰 사업으로 제시했으며 이에 교회 준공식을 6.15 남북공동성명 5주년을 맞이하는 2005년 6월 15일에 갖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이 자리에는 '평양 제1교회'가 위치한 인근에 조선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토마스 선교사가 죽임을 당한 곳이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으며 아울러 총회내 4개의 이북노회가 각각 2억원씩 출자해 1월 말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10. '평양 제1교회' 건축자재 북송

총회장의 신년 기자회견 후 한 달이 지난 2005년 3월 16일, 21일 양일간에 건축공사를 위한 자재가 인천항을 통해 북으로 보내졌고, 건축준비위측은 오는 6·15 남북공동성명 5돌을 기념해 준공한다고 공고했다.

예장 통합측이 설계 및 공구, 자재 등을 지원하고 북측의 조그련은 대지 정리 및 건축을 담당하며 공사비는 다시 조정돼 총 8억원 정도가 소요되며 이는 예장 통합 소속 이북 4개 노회가 부담한다고 밝혔다.

11. '평양 제1교회' 건축을 위한 남북 기도회

남북 양측은 건축 자재 북송 1주일 후인 3월 22일 오후 6시, 금강산 온정리 문화회관에서 남북 공동으로 부활절 특별기도회를 열어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또한 다음날인 23일에는 북측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 일행과 봉수교회 중창단 그리고 남측의 예장 통합 총회장 김태범 목사, 사무총장 조성기 목사 일행들과 함께 온정리 문화회관에서 '평양 제1교회' 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12. '평양 제1교회' 완공식과 봉헌식

건축자재를 북송한 8개월 후인 2005년 11월 11일, 드디어 예장 통합 안영로 총회장과 임원들이 평양을 방문해 공사를 모두 마친 '평양 제1기도처소'를 찾아 역사적인 첫 예배를 드리며 준공식을 가졌다. 이어서 6개월이 지난 2006년 5월 12일에는 총회장과 이북 4개노회 회원들이 또 다시 방문해 제2차 예배를 드리며 '평양 제1교회' 헌당식 예배를 정식으로 드림으로 모든 건축 공사 절차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헌당식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는 기도회나 예배가 이뤄지지 않고 빈 공간으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양 제1기도처소'헌당식 설교를 하는 남측 에장 통합 총회장 안영로 목사.(2006년 5월 12일)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기도처소'헌당식 설교를 하는 남측 에장 통합 총회장 안영로 목사.(2006년 5월 12일) ⓒ최재영 목사

남측 예장 통합측 소속 '이북 4개 노회' 회원들이 '평양 제1기도처소'를 방문해 예배 를 드리는 장면. ⓒ최재영 목사

남측 예장 통합측 소속 '이북 4개 노회' 회원들이 '평양 제1기도처소'를 방문해 예배 를 드리는 장면.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기도처소'에서 북측 조그련 백봉일 목사(앞줄 우측에서 두번째)와 예장 통합측 소속 '이북 4개 노회' 회원들이 기념 촬영하는 모습.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기도처소'에서 북측 조그련 백봉일 목사(앞줄 우측에서 두번째)와 예장 통합측 소속 '이북 4개 노회' 회원들이 기념 촬영하는 모습. ⓒ최재영 목사

 

'평양 제1기도처소'가 주는 의미와 교훈

'평양봉수교회' 재건축 공사를 책임진 예장 통합측 관계자는 '평양 제1교회' 건축 취지와 관련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증언해 주었다.

"평양시를 포함한 이북의 각 도에 교회당 하나씩을 짓는다면 북한 영토에 모두 11개의 교회당이 세워진다. 그렇게 되면 남측 교회가 이 교회당들을 통해 북 인민들에게 전국적으로 쌀이나 구호물품을 지원해 줄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북측 조그련의 위상을 높여주면서 동시에 북 인민들의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으니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발상과 기획은 좋았지만 북측에서 선뜻 응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었으며 여러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케이스인 '평양 제1기도처소'가 설립됐으나 현재는 예배당의 존재 이유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교회로서의 기능이 매우 무기력해져 있는 상태에 있다.

북측 조그련은 전쟁(6.25) 시기에 자신들의 영토내에 무너진 교회들을 재건하거나 이미 세워진 봉수교회나 칠골교회가 당장 눈에 보이는 급성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역 가치와 교회 존재 이유는 '민족과 자주'를 기반으로 한 '조국 통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 '선교'라고 한다면 북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산하 모든 공식교회와 가정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당장의 지상명령으로 알고 있다.

내가 찾았던 '평양 제1교회당'은 '교회'라는 명칭대신 '기도처소'라는 간판을 달고 침묵속에 교회당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울러 신자들의 공동체 조직이나 교회로서의 역할도 이미 중단된 상태에 있다. 심지어 앞으로 교회당의 존재조차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어서 속히 남북관계가 회복되어 이곳 '평양 제1교회당'에서 다시 찬송과 기도소리가 울려퍼지며 남과 북이 함께 손을 잡고 예배드리는 날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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