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핵시험의 핵심② 실험과 시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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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는 이미 2006년에 위험 수준을 넘었다

북한의 핵기술이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수소폭탄까지 도달했는지 안 했는지, 핵분열탄 제조 기술도 완성된 것인지 아닌지, 미사일에 탑재할만한 소형화, 경량화에 도달했는지 안 했는지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모든 판단은 북한에서 직접 내놓은 자료 말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므로 객관적으로 판단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북한 정부 차원의 공식 발표가 수소탄 기술을 사용하였고 경량화, 다종화 등을 추구하였다고 하니 부정할 논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그런가보다 하고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긍정적으로 나와야만 북한의 핵기술이 위험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이 성공적으로 시험에 사용한 핵무기가 매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이미 구체적으로 증명되었다.

즉 2006년 1차 핵시험 이후 북한은 모두 4차례에 이를 외부에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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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험의 구체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매우 강력한 인공지진을 일으킬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지닌 핵무기를 4번이나 안정적으로 시험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북한은 2006년부터 매우, 매우 위험한 무기와 기술을 자체적으로 보유한 핵무기 및 핵무기 제조 기술 보유국가가 되었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이다.

운전면허 시험에서 70, 80점이라는 절대평가 점수를 넘으면 합격인 것과 같이, 북한은 이미 그렇게 되었다.

운전면허 시험에서 99점인지 100점인지가 중요하지 않듯이 핵무기 제조 기술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상당히 위험한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3년 주기로 프로그램이 확립되었다

이번 시험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정보는 3년 주기의 핵 프로그램이 확립되어 다른 정책과 독자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핵보유국을 헌법에 명시하면서 핵물질 확보와 관련한 결정이 채택되면서 핵 프로그램이 확립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경제-핵 병진노선이 2개의 별도 프로그램이 병진적으로 추진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2013년 북한의 핵 정책: 경제-핵 병진노선

북한은 2013년 1월 3차 핵시험 이후, 3월 말에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핵무력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이는 1962년 경제건설-국방건설 병진노선을 이어받은 정책으로 선전하는데, 핵무력은 포기하지 않고 이를 중심으로 군사조직을 다시 재편하겠다는 뜻이다.

1962년 경제-국방 병진노선은 제1경제와 제2경제 즉 민수 경제와 군수 경제를 완전히 둘로 나누어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였다면, 2013년 경제-핵무력 병진노선도 이와 비슷하게 민수와 군수, 특히 핵무력 부분을 완벽히 독자적으로 운영하려는 듯하다.

1962년 경제-국방 병진노선 채택 이후에는 국방 쪽이 더 우선되어 민수가 위축되었는데 2013년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에서는 경제 즉 민수 쪽이 더 우선되었는지 경공업을 비롯한 인민생활과 직결되는 부분이 더욱 활성화되는 흐름이다.

예전에는 국방건설을 위해 우선적으로 동원되었을 군수 부분도 이제는 인민생활 향상, 즉 경제건설을 위해 더 많이 동원되는 느낌이다.

2013년 신년사부터 새롭게 등장한 '군민협동작전'은 아마도 군수의 민수 전환이라고 하는 스핀오프(spin-off)의 북한식 번역어인 듯하다.

즉 2002년부터 경제발전전략으로 자리잡고 추진된 국방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동시발전 전략에 의해 우선적으로 발전된 군수 부문의 인력, 자원, 자금 등을 민수 부문으로 돌리는 활동을 '군민협동작전'이라고 하면서 적극 추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2013년 병진노선은 군수 중에서도 핵무력관련 부분은 계속에서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보장하고 다른 군수 부문은 민수 부문 활동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2015년 10월에 처음 개최된 '군수공업부문 생활필수품 품평회'는 유모차를 비롯한 인민생활 필수품 생산에 최고 수준의 생산능력을 가진 군수공업부문 공장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스핀오프, 즉 군수의 민수 전환 전략을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오늘날 일상에서 쓰고 있는 첨단 기술들 중에는 군수 기술에서 전환된 것이 많은데도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사회의 사례를 기준으로 분석한 것이라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사기업 중심의 기술 전환은 서로 경쟁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의 경우 모든 생산재는 국유 혹은 공동 소유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통일단결 수준은 상당한 수준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적 관계와는 다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덜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북한식 경쟁관계의 표출인 기관본위주의 같은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군수의 민수 전환이 기업 단위를 일어나지 않고 핵심 기술 인력, 자원, 재원, 설비 같은 수준에서 일어난다면 저항감이 적을 수 있다.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고난의 행군을 끝낸 직후인 1998년에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챙긴 것이 과학기술 분야였다.

강성대국 건설 전략에서도 3대 기둥 중 하나로 소개되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경제대국 건설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과학기술이라고 하면서 중시되었다.

1999년 새해 첫 일정을 '과학원' 현지지도로 시작하고 이 해를 '과학의 해'로 선언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기 경제발전 계획은 마련하지 못하였지만 과학기술 발전 5개년 계획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4차에 걸쳐 계속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2002년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정립한 경제발전 전략은 국방공업 우선, 농업-경공업 동시 발전 전략이었다.

1962년부터 별도 영역으로 독립시켜 보호 육성한 군수 분야의 발달한 과학기술 즉 국방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경제발전의 동력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었다.

군수의 민수 전략, 즉 스핀오프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군사적 긴장 관계가 풀리는 것이 필요했는데,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계속 해결되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2차 북핵 위기는 결국 북한의 핵무력의 확보까지 이어졌고 이는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안정적인 환경, 대규모 자금 마련 등을 어렵게 하였다.

2002년부터 시행하려 했던 경제발전 전략은 2009년까지 지연될 수밖에 없었고 그 마저도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의 자력만으로 시행되었다.

2009년 8월 첨단돌파 전략이라는 형태로 시행된 북한의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은 지연된, 한계가 많은 경제발전 전략이었다.

이는 결국 더딘 변화, 굴곡 많은 사업시행으로 이어졌다.

군사적 대결 상황을 종식 시키지 못한 결과, 북한 지도부는 핵과 운송수단 모두 완비하는 방향으로 결심을 굳혔고 이는 최근까지 4차 핵시험, 광명성 4호 발사까지 이어진 것이다.

실험과 시험의 차이

북한의 핵'시험'을 남한 언론에서는 한결같이 '실험'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언어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부정의 이미지 덧씌우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험과 시험을 한글로 쓰면 'ㄹ'한 획의 차이이지만 의미는 확연히 다르다.

실험은 이론을 발견하고 가다듬어 나가는 과학연구 활동의 일환이고 시험은 구체적인 상품, 생산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는 활동이다.

즉 기존에 없었던 과학이론이나 주장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실험'을 하는 것이고 새로운 상품이나 생산물을 만든 이후 제대로 작동하는 지 살펴보기 위해 '시험'을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정의 차원의 설명이 어렵다면, 그 활동의 결과가 성공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살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험'에 성공하면 과학이론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반면 '시험'에 성공하면 그 시험에 쓰인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론의 생산을 위해 '실험'을 하고 제품 생산을 위해 '시험'을 수행하는 것이다.

흔히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즉 과학기술의 발달, 생산력 향상, 경제 발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모든 경로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선형모델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 경로와 경제 발전 경로는 매우 복잡하고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흐름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므로 하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과 시험을 구분하기 위해 선형모델을 활용해보면 이해하기 좀 더 쉬워진다.

과학자들이 고심한 끝에 '이론'을 제기하면, '실험'과 '토의'를 이어가다가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참으로 밝혀진 이론 중 일부가 '생산' 현장의 필요한 곳에 도입되려면 여러 번의 '시험'을 거듭하면서 상품이나 생산 공정의 수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된 다음 최종 '시험'을 거치면 새로운 상품이나 생산 공정이 완성되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실험'은 과학 연구 쪽에 속해 있다면 '시험'은 생산 쪽에 속해 있다는 것이 명확히 보인다.

실험과 시험의 차이는 영어로 번역하면 너무나 명확하게 구분된다.

실험은 experiment이고 시험은 test이다.

북한의 핵시험에 대해 남한 언론에서는 experiment라고 하는 핵실험으로 일관되게 쓰고 있지만 모든 영어 표현은 test로 표현된다.

[핵실험, 핵시험 용어와 관련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참고하라.(관련기사 보기)]

 

강호제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북한 과학기술사 및 과학기술정책 전공
2007년 박사학위 수여
현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저서 '북한 과학기술 형성사1' (선인, 2007)

※통일뉴스 동시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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