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마시대 특집]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

[만리마시대 특집]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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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마 특집 기사 소개 :  http://nktoday.kr/?p=15074

 

만리마운동의 전신은 천리마운동이다.

따라서 북한이 규정한 만리마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리마운동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리마 포스터. 천리마 포스터와 유사하다.

천리마운동은 1956년 12월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김일성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당시 온 사회가 '천리마를 타자'는 구호도 들끓었을 정도로 천리마운동은 북한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천리마운동에 의한 급속한 경제성장은 세계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만리마운동이 천리마운동을 본딴 것인 만큼 천리마운동의 배경, 전개과정, 의미, 그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오늘날 만리마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3차례 연재기사를 통해 북한 천리마운동을 집중분석해보고자 한다.

['만리마시대' 특집] 만리마운동의 전신은 '천리마운동' 
  ① 천리마운동의 배경과 성과  http://nktoday.kr/?p=15149
  ② 천리마 시대의 영웅들 http://nktoday.kr/?p=15164&
  ③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

[만리마시대란]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

첫 '천리마작업반'은 강선제강소의 진응원작업반이다.

Youtube에 올라온 영화 캡처.

이 진응원작업반이 어떤 과정을 통해 천리마작업반 칭호를 얻게 되는지를 담은 영화가 있다.

바로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이다.

'민족과 운명'은 민족의 비극으로 수난당한 개인들의 운명을 담은 장편시리즈물이다.

이 영화시리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노래의 의미가 담긴 영화를 제작할 것을 제안하면서 만들어졌다.

총 100부작을 목표로 하는 '민족과 운명'에서 26부에서 36부까지가 바로 노동계급편이다.

youtube에 올라온 영화 캡처.

일제강점기의 억압, 분단의 아픔, 전쟁의 비극을 딛고 강선 노동자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 강철로 사회주의공업국가 건설에 이바지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1. 노동계급과 쇳물철학

영화 주인공인 진응산(진응원)은 남쪽 출신이다.

한국전쟁 중 의용군(인민군)으로 입대했던 그는 유엔군에게 붙잡혀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의 고문을 가까스로 이겨낸 진응산은 전쟁이 끝나고 북한으로 가게 된다.

부인을 남쪽에 두고 온 진응산은 이동 중에 우연히 처남 고승렬을 만나게 된다.

인민군에 함께 자원입대했지만 지뢰 해체 작업을 하다가 시력을 잃은 승렬은 소속 분대장인 강태섭을 따라 강선에 와 있었다.

응산은 승렬에게 폭격으로 승렬의 누나, 즉, 부인이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분대장 강태섭은 고립무원 상태에 놓인 진응산과 고승렬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곳은 강태섭의 형 강태관을 중심으로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강선제강소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집안이었다.

강태관은 해방된 해에 김일성 주석이 고향인 만경대를 가지 않고 강선부터 왔다면서 김일성 주석과 만난 일화를 알려준다.

당시 김일성 주석이 "나는 백두산에서 배낭 하나밖에 가져온 것이 없다. 나라의 주인은 바로 동무들이다. 동무들은 해방된 조국의 운명을 두 어깨에 걸머지고 나가야할 기둥이며 주춧돌이다. 이제부터 빈터 우에서 새 조선을 세워야 한다.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세상에 으뜸가는 일류의 새 조국을 세우자."고 말했다고 강태관은 그 시절을 추억한다.

강태관은 자신의 동생들을 민족시련의 풍파 속에서 3명이나 잃었지만 '대신 임자들이 왔다'며 진응산과 고승렬을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이런 식으로 강태관의 집에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부잣집 딸로 가족 곁을 떠나 홀로 북으로 올라온 여성기술자 한송옥, 일본사장에게 강철제강소를 물려받은 제강소 실제 소유주 사옥비 등이 등장한다.

영화는 당시 제강소에 이남출신, 포로출신 사람들을 따돌리는 분위기가 실제 있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이들이 간첩으로까지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강태관은 '쇳물철학'을 이야기하며 이남에서 온 사람들을 믿어주고 더 내세워준다.

강태관의 쇳물철학은 그 어떤 형태의 파철이라도 전기로에 들어가면 하나의 붉은 쇳물이 되는 것처럼 민족 성원 누구도 노동계급의 품속에 들면 '노동계급화'된다는 요지의 철학이다.

강태관은 노동계급이 '나라의 맏형' 구실을 해야 한다면서 집단주의 정신을 모범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자기 먼저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은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자기 재산이 없고 제 몸뚱아리 하나만 가진 계급을 뜻한다.

공장을 잘게 쪼개서 소유,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집단성이 강해 집단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의 '영도계급'으로 꼽힌다.

이 강태관네 집안 사람들이 강선 노동계급의 한 가정으로 쇳물철학에 의거하여 집단주의와 희생정신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바로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 내용인 셈이다.

전후복구장면. Youtube에 올라온 영화 캡처.

2. 천리마시대 사람들의 헌신

노동계급편에는 천리마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자긍심이 묻어나온다.

그러한 긍지는 사실 보통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시련들을 이겨내고 집단주의와 희생정신을 발휘했기 때문에 생성된 것이었다.

진응산과 고승렬은 40톤로가 완성되기 직전에 로 밑에 폭탄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폭탄을 해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강태관은 진응산과 고승렬의 목숨이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다면서 폭탄을 직접 들고 옮기는 역할을 자진해서 맡는다.

강태관의 딸 강옥은 전쟁으로 고아가 된 청소년들이 보안원(경찰)에 붙잡혀 혼나고 있자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키운다.

강옥의 제안으로 강선제강소로 간 고아청소년들은 일을 잘하지 못해 작업반장에게 욕을 먹고 결국 강옥의 집을 떠난다.

그 아이들을 찾기 위해 강옥은 온갖 직장에 편지도 보내고 찾으러 돌아다니기도 한다.

결국 아이들이 집이 없어서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강옥은 자신의 집과 살림살이 일체를 그들에게 넘겨주면서까지 해서 고아들을 다시 데리고 온다.

남에서 올라온 여성과학자 한송옥은 강태관의 아들 강석과 함께 설계기사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40톤로, 연속가열로, 선괴압연기 설계를 창조하는 등 강선제강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강석은 전쟁때 입은 상처와 그 휴유증, 불면불휴의 연구활동으로 악성종양을 몸에 품게 되고 결국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다들 평양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라는 권고를 하지만 강석은 불치의 병을 갖게 된 이상 마지막까지 선괴압연기 설계를 마무리하겠다면서 현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일하다 죽는다.

평소 강석의 청혼을 받아왔지만 거절해온 한송옥은 강석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에 그와 결혼할 결심을 한다.

강석과 강태관 집안 사람들은 송옥의 청혼을 완강히 거절하지만 송옥은 아이를 뱄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결혼승낙을 받아낸다.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 모습들이 담긴 영화에서 가장 큰 헌신의 자국을 바치는 인물은 바로 강태관의 딸 강옥이다.

제강소의 단결을 위해 이남출신 진응산과 결혼하라는 아버지 강태관의 요구에 강옥은 홀아비라 주저하면서도 결혼을 한다.

그렇게 하여 온갖 뒷바라지로 진응산을 천리마영웅, 조선노동당 당원, 첫 천리마작업반장이 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다.

그러나 진응산의 본처가 북한 양덕군에 살아있다는 충격적 소식을 접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강옥은 자기 인생의 가장 큰 결단을 내리게 된다.

자체의 힘으로 40톤로 가열로를 제작한다. Youtube에 올라온 영화 캡처.

3. 쇳물집 추억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이 인기를 끌자 북한에서는 영화의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4부작 '쇠물집 추억'을 냈다.

쇠물집 추억에 따르면 제작진과 배우들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고난의 행군 시기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강선제강소 사람들을 형상화했다는 점, 대본이 대부분 강선제강소에서 있었던 사연들을 담은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화 제작에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

배우들을 비롯하여 제작진 모두가 먹을 것이 부족해 옥수수, 감자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열과 성을 다해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특히 주인공 강태관 역을 맡은 유원준은 영화 제작 막바지에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영화 제작에 끝까지 참가하여 마지막 장면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찍었고 결국 영화가 마무리된 직후 사망했다.

이 영화는 함흥의 한 인력거군 아들로 태어나 '대지의 아들', '춘향전' 등 100여편의 영화, 수십편의 연극에 참가했고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았던 유원준의 유작인 셈이다.

유원준은 주인공 강태관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강태관은 이 영화가 관람객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천리마 시대 인간상의 본보기라고도 볼 수 있다.

"남의 불행을 동정해주는 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남의 불행을 함께 걸머지는 이가 진짜 좋은 사람이다. 불난 집에 가서 바지 말릴 생각을 하면 그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강물은 아무리 맑다해도 잉어만 살 수 없지 않나. 민족의 흥망은 노동계급이 씨암닭 구실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믿고 따뜻이 품어줘야 한다."

"제 눈은 보석이고 남의 눈은 유리알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천리마운동을 심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곽동섭은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 천리마운동은 인간을 참되게 개조하는 운동이다. 여기에 천리마운동의 위대한 생활력과 승리가 있다. 양심을 털어놨다고 해서 처벌한다면 가슴에 재가 안도록 고민하다가 털어놓는 의미가 없지 않나. 우리는 티없는 양심을 바라고 있다."

"하물며 말 못하는 전기로도 파철 탓을 안한다. 작업반 성과 내자고 부족한 사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러한 천리마시대의 철학이 담긴 영화가 바로 '민족과 운명 노동계급편'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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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